※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어디까지나 완결까지 써보는 게 목적으로 내 글 구려병으로 고통 받고 있습니다. 지적은 반사합니다.


비술사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란 게토 스구루는 늘 본심을 가리고 웃는 낯을 하곤 했다.
그건 종이로 만든 가면 같은 종류였다.
술사로서의 자질이 개화하는 시기는 대략 다섯에서 여섯 살 즈음이다.
어린 아들이 괴물이 보인다며 울먹일 적마다 아버지는 허황된 이야기를 꾸며낸다며 체벌을 했다.
오해는 하지 말자. 아동학대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용납되는 수준으로 회초리를 들었을 뿐으로 소금을 잔뜩 넣은 밥을 주거나 한겨울에 마당에 세워두고 찬물을 뿌리는 멍청한 짓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눈치가 빨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징그러운 괴물이 보인다는 말을 더 이상 꺼내지 않았고,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는 기행도 더 이상 저지르지 않았다.
그간 거짓말을 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자 양친은 뛸 듯이 기뻐했다.
그 기뻐하는 표정을 소년은 그대로 따라하며 흉내를 냈다.

『아, 신난다. 써먹기 좋은 부하 1호가 생겼네. 하기노츠키(※촉촉한 카스테라에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간 지역 과자) 사오라고 심부름을 보내면 딱 이겠다. 한정판 초코렛 맛은 하루에 50상자밖에 팔지 않는다고? 혼자 줄 서는 거 힘든데 잘 됐다. 아참! 스구루는 잘 모르지? 하기노츠키는 센다이 명물 과자야. 부드러운 촉감이 일품이지.』
잠자리 날개를 뜯으며 재밌어 하는 어린애 모습으로 고죠 사토루가 싱글벙글 좋아했다.
그 옆에서 게토 스구루도 사람 좋아 보이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
반달모양으로 휘어진 눈매만 봐선 손톱이 두 개나 생으로 뽑혀나간 데다 아직 응급처치도 못한 상태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할 정도였다.

『물론 심부름을 보내기 전에 우리 중학생에게 시킬 일이 하나 있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마. 너, 몸에 새긴 봉인술식 풀어라. 다섯 개 중에 두 개라도 풀어. 사지 절단나지 않도록 이 몸이 알아서 컨트롤 해줄게. 잘 하면 아프긴 해도 죽을 정도까진 아닐 거야. 어때. 마음에 들지?』

간혹 어쩌다 종이가면 같은 미소가 지워지고 가감을 하지 않은 맨 감정이 얼굴에 드러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수소원자 두 개와 산소원자가 극성 공유 결합하는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게토 스구루의 종이 가면이 벗겨졌다. 고죠 사토루가 힐끔거리자 언제 그랬느냐며 친절한 이웃 오빠 낯짝으로 돌아왔지만.

『싫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이이지마 하나에가 발끈하자 고죠 사토루는 손가락을 꾸물꾸물 움직여 물결치는 파도를 흉내 냈다.
『그렇게 하지 않음 뱀 대가리에게 잡아먹힐 테니까.』
『뭐?!』
『미완성 전개영역이 아까보다 더 커졌다고? 이 정도면 주물은 저쪽이 이미 흡수했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야. 물론 막연히 그럴 거다 짐작만 하는 거라 아직 주물을 흡수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거기까지 말한 고죠 사토루는 고개를 들어 천장 너머 어딘가를 쳐다봤다.
대략 7층에 있는 9학년 7반 교실 어디쯤이었다.
미리 밝혀두지만 카제야마 중학교는 5층 건물이다.
그리고 일본의 다른 중학교와 마찬가지로 3학년제다.

『게임으로 치면 보스 몬스터는 어디에 있는지 지도에 표시가 안 되어 있고, 고블린이 입다 버린 팬티는 바닥에 깔렸고, 슬라임이 기어간 자국만 보이고, 0레벨 마을 주민들은 순진하게 버섯 따러 왔다가 동굴 안에 갇혔어. 초보 용사가 별 거 아니라고 판단해서 도전! 이러고 퀘스트를 받았는데 기절초풍하게 던전 레벨이 D가 아니라네? 자, 그러니 용사님. 싫어도 본인 레벨부터 올리셔야죠. 아님 모가지가 똑, 하고 날아가요. 버섯 따던 주민들도 전부 죽고요.』
전개영역이 완성되면 최악의 경우 내부에 있는 인원 전부가 몰살당한다.
아니, 무하한의 상전술식을 가진 고죠 사토루 본인을 제외하고 모두 죽을 거다.
아랫입술을 가만히 안쪽으로 빨아 당긴 모습으로 생각에 잠긴 게토 스구루도 속으로 승률을 계산해보더니 안색이 나빠졌다. 막연한 자신감 이전에 그는 아직 주술고전 1학년생으로 이런 위험한 현장에서의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살아남을 확률... 그 이전에 시체가 온전히 남을 가능성부터 따져봐야 했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전부 사용한다.』
고죠 사토루가 이이지마 하나에의 왼쪽 손목을 붙들고 힘을 줬다.
순간 뜨겁게 달구어진 냄비가 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터지는 식의 굉음이 나면서 손목에 차고 있던 팔찌가 산산조각 났다. 동물의 뼈를 가공하여 만든 구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파공음은 피부를 타고 빠르게 올라가 어깨까지 단숨에 올라갔다. 회전하는 힘에 휩쓸려 팔이 360도 이상 돌아갔다. 아니, 아직은 돌아가지 않았다. 고죠 사토루가 아직 이이지마의 손목을 쥔 채로 좌로 회전하는 힘에 맞서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힘을 가해 폭발하는 힘을 상쇄하려 했다.

아니야, 이건 진짜 아니야.
이이지마의 눈이 휘둥글 벌어졌다. 산 채로 갈려나간다는 감각에 몸부림쳤다.
『야! 이거 놔! 당장 놓으라고! 아님 나 죽어!』
『안 죽어.』
믿어라. 제대로 살려놓고 하기노츠키 한정판 사러 심부름 보낸다.
새파랗게 겁에 질린 이이지마의 어깨 위로 다른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다급히 끼어들려 하는 게토 스구루에게 소리쳤다.
『제대로 하고 있으니 넌 보기만 하고 끼어들지 마!』
난폭하게 소용돌이치던 힘을 무하한을 두룬 자신의 팔로 옮겼다가 재빨리 땅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무거운 철판이 곤두박질치는 굉음이 나면서 교장실 바닥으로 큰 구덩이가 파였다.

건물이 또 흔들렸다.
1학년 2반 반장인 하시모토 리코는 8층까지 걸어 올라가다 말고 중간에 멈춰 섰다.
도대체 학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현기증이 나려 했다.
더 위로 올라가고픈 마음도 이미 솜털처럼 녹아 사라졌다. 계단은 끝도 없이 위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 흡사 센다이 시내에서 가장 높은 30층짜리 빌딩 내부처럼 느껴졌다.
30층이 별 거냐 하겠지만 부근 지반은 암반이 없어 무르고 지진에 취약한 탓에 높은 건물을 짓지 않았다.
오르고 올라도 계단이 이어지는 풍경은 낯설었다.

단단히 뭉쳐 아파오는 종아리 근육을 문지르고 교실의 푯말을 확인했다. 9학년 2반이라 적혀 있었다.
만우절 장난은 아닐 테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떠보았다. 여전히 9학년 2반이었다.
『모르겠다... 나, 이미 죽은 걸까.』
어쩌면 사후세계를 경험하는 중인 건지도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적이 있다. 사고로 갑작스레 죽은 영혼이 죽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이승과 저승 경계선에서 방황하는 거다.
손목에 찬 전자시계를 내려다봤다. 13분을 가리키던 숫자가 방금 전 12로 바뀌었다.
확실히 저승 언저리 어딘가로 떨어진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손목시계의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리라.

『우리, 이미 죽은 거야?』
소꿉친구인 이시즈미 루미가 나, 를 우리, 로 고쳐 말하며 울먹였다.
그녀는 최후의 기억을 더듬으며 의심에 의심을 거듭했다. 언제 죽어버린 걸까. 새벽에? 아침에? 등교시간에?
그나마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사고가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눈물로 얼룩진 뺨을 문질러 닦고 기억을 더듬었다.
교통사고가 있었나?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이 인도를 덮쳐 하시모토 리코와 손을 잡고 나란히 죽어버렸다? 모르겠다. 떠오르는 일이 없었다. 점심시간에 허겁지겁 밥을 먹다 급체가 와 세상을 떠났을 것 같지는 않은데.
먹은 반찬은 가지무침에 소시지 볶음, 오이장아찌와 맑은장국이었다.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지만 싫어하지도 않는 종류라서 흡입하며 먹다 숨이 막히는 일은 없었을 거다.

『뭐?! 하시모토랑 이시즈미, 죽은 거야?! 언제?!!』
마찬가지로 8층까지 올라갔다 내려온 동급생 나카소네 키요타가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버럭 고함을 질러댔다.
『그럼 혹시 나도 죽은 건가?!』
나카소네의 외침에 울음이 나오던 게 쏙 들어갔다. 이시즈미는 헛소리 그만 하라며 화를 냈다.
『내가 왜 너랑 같이 죽어! 리코와 난 같이 죽어도 되지만 너는 아니야. 죽으려면 혼자 죽어!』
『너무해.., 이시즈미. 차별 쩔어.』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나카소네가 저승길에서조차 왕따가 되어 부모님 낯을 볼 면목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만담 개그를 펼치고 있는 두 사람을 짐짓 무시한 하시모토 리코는 창문을 열고 밖을 살펴봤다.
언제나의 바깥풍경처럼 보였지만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날아가는 새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보여야 할 태양이 위치를 이탈하여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공기가 기체가 아니라 고체로 변한 느낌이다. 만지면 두부처럼 포슬포슬 부서질 것 같았다.
창문을 도로 닫고 깊게 심호흡했다. 어쩐지 숨쉬기가 힘들었다.

『탈출 못한 3학년 선배들이 난리가 났어. 콧쿠리님 찾는다며 단체로 눈 돌아갔더라.』
마찬가지로 푹푹 숨을 내쉬며 나카소네가 말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한 것치고는 호흡이 거칠었다.
『커터 칼 들고 나더러 1학년 2반 아니냐며 물어보더라고. 진짜 무섭더라. 그래서 3반이라고 거짓말했지. 2반이 맞다 사실대로 말했으면 계속 붙들려 있었을지도... 근데 웃긴 게 2학년들까지 학교에 내린 저주를 풀려면 1학년의 콧쿠리님을 잡아야 한다며 뭉친 눈치더라. 이이지마 선배는 무서우니까 대신 만만한 스가와라를 타겟으로 잡은 거지. 그러니까 반장도 그렇고 이시즈미도 달고 있는 명찰을 떼어서 버려. 우리가 1학년 2반이라고 들키면 좋을 거 없어. 선배들은 우리가 콧쿠리님을 따로 안전한 장소에 숨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어.』
『숨기긴 뭘 숨겨. 기가 막혀서!』
화를 내면서도 일단은 조언에 따라 명찰을 떼어 얌전히 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그건 그렇다고 치고. 콧쿠리님을 찾으면 어쩔 작정이래? 체육관 단상에 모셔두고 단체로 심신공경례라도 하겠데? 비나이다, 비나이다. 저주를 물리쳐 주시옵소서, 이러고?』
『몰라. 단체로 눈 돌았다고 했잖아. 이성적으로 대화를 할 분위기가 전혀 아니더라고.』
『미치겠네.』

세 사람이 저마다 머리를 끌어안고 끙끙 앓고 있는데 타박타박 이러고 계단을 밟는 기척이 들려왔다.
소스라치게 놀라 돌아보니 스가와라 미즈키, 그러니까 1학년의 콧쿠리님이 아무 고민 없어 보이는 맹한 얼굴로 휴지, 휴지, 이러면서 윗층으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Posted by 미야

2021/04/20 12:08 2021/04/20 12:08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2188

Leave a comment

※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이런 걸 두고 기시감이라고 하던가. 고죠 사토루는 가볍게 혀를 찼다.
살벌한 기세를 내뿜으며 중학생이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다.
배경으로 푸른 불꽃이 보이는 듯했다. 분노와 증오, 덧붙여 두려움과 공포가 한데 뒤섞인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면서 이이지마 하나에가 까득 이를 갈았다.
그래봤자 고죠 사토루에게는 고양이 하악질이어서 무심결에 손을 들고 여어, 인사하려 했다.
도중에 마음을 고쳐먹은 건 이번에도 남성의 중요부위를 걷어차려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옆에 자리한 게토 스구루도 PK에 대비하는 축구 수비수처럼 눈치껏 방어 자세를 잡았다.

그런 두 사람을 위아래로 흘겨보며 이이지마가 말했다.
『찾았으면 내놔.』
『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언제 보따리 맡겼어?』
한쪽 눈썹을 갈매기처럼 휘게 만들며 게토 스구루가 항의했다.
듣는 척도 안 하고 중학생은 무슨 레이저 스캔하듯 그의 몸을 훑었는데 그게 거의 발가벗기는 시선이라 당하는 입장에선 매우 낯설고 불쾌했다.

『뭐야... 자세히 보니 빈손이네.』
『아니, 그러니까 언제 우리에게 보따리 맡겼냐고.』
막 입을 열어 다시 항의하려던 찰나, 관찰을 마친 이이지마는 용무 따윈 이제 없다는 투로 두 사람을 지나쳐 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흡사 빈집털이범인양 이곳저곳을 빠르게 들쑤시기 시작했다.

장식장을 열어 트로피 안으로 일일이 손을 넣고 있다. 찾는 물건이 뭔지는 몰라도 나올 기미가 없자 액자 뒤도 더듬거리고, 책상서랍도 전부 열어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득이 없자 주둥이가 좁고 긴 장식화병을 집어 올렸다. 던져 깨뜨려 안에 내용물이 들었는지 확인하려는 거였다. 잘 몰라도 유명 장인이 만든 도자기였는데 한 번 결심하자 망설임이 없었다. 30만엔이 조각으로 부서졌다.

『쟤 지금 왜 저래.』
『글쎄다, 스구루. 쌓인 원한 풀기? 내가 당주 방에서 깽판 치는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는 한데...』
『잠깐만. 고죠 당주면 네 아버지잖아. 너는 아버지를 당주라고 부르냐?』
『아니. 평소엔 놈 자(者)로 부르지.』
소파쿠션을 잡아 뜯는 것까지 지켜보던 고죠 사토루가 짝짝 박수를 쳤다. 먼지가 나니 그만하라는 거였다.

무엇을 찾고 있는 거냐고?
슬프게도 이이지마 하나에 본인도 잘 몰랐다. 바람결에 전해들은 이야기도 있고 토막글을 읽은 적도 있으나 상세하게 묘사한 내용이나 그림은 본 적이 없었다.
그저 보면 알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 그거 하나만 지푸라기처럼 잡고 있는 거였다.

이이지마 본가에 있는 창고 깊숙한 곳으로 여인이 쓴 일기가 하나 봉납되어 있다.
《이소노카미 신궁에 급히 소식을 띄워 부해한 신의 목을 베려 하오니 청컨대 신물을 내리옵소서 읍하였으나 감히 매월 피 흘리는 몸으로 황가의 보물을 꺼내가려 하느냐 호통만 돌아왔다. 마음에 한스럽지 않다 그리 말하면 거짓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오는 되어 있었다. 하여 내 장례 절차를 미리 준(竣)하고 시신이 없이 묘를 쓰라 명하였다. 동생이 싫다 울었기에 그럼 이것으로 관(棺)에 넣어라 손가락을 잘라주었다. 동생은 울음을 그치고 두 번 절한 뒤 삼가 뜻대로 상(喪)고저하옵소서 말하고 물러갔다.》

1943년 8월 말, 주령으로 타락한 신을 조복하라는 명령을 받고 주술사들이 모였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건지, 전쟁 중이던 사회적 배경 탓인지 모인 주술사들을 지휘하는 자가 여자였다.
지금도 남녀차별이 극심한데 1940년대였으니 여자가 우두머리인 조직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적을 치기 위해 이소노카미 신궁으로 황가의 보물을 꺼내 달라 요청을 넣었으나 당연히 무시당했다.
심지어 더러워 초밥도 못 만드는 여자의 몸으로 감히 신물을 쥐는 게 가능할 것 같으냐며 난리가 났다.
9월 초, 시간을 더 지체할 수 없었던 여자는 동생에게 손가락을 하나 잘라주고 이것으로 무덤을 쓰라 유언을 남겼다. 신변 정리까지 마무리가 되어 여자는 체념 상태였다.

「누부(누이)는 잘린 손가락 대신 주구를 상처에 꿰매어 붙이고 그 길로 죽으러 가셨습니다.」
술사의 원념 때문인지, 아니면 동생의 집착 탓인지 잘린 손가락은 그대로 주물이 되었다.
이이지마 가문의 봉인술식으로 단단히 묶인 여자의 손가락은 상하지도 썩지도 않았다.
「주술사의 신체는 재가 되도록 태워야 합니다만... 억울해서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를 치루는 와중에 집안의 높으신 어르신이 그러더군요. 황국신민으로의 의무를 다 하게 되었으니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카리야세 집안의 경사라고.
그래서 그따위 축하 인사는 받고 싶지 않다고, 자살을 강요하는 황국은 차라리 망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누부의 손가락을 빼돌려 히로시마로 도주했습니다.
장례식장이 발칵 뒤집혔지요. 하지만 알 게 뭡니까. 그 길로 주저사가 되어 저주발원을 했습니다. 망해라, 망해라... 집안이고 황국이고 몽땅 망해버려라 빌었어요.
몇 년을 그렇게 숨어 지내다보니 어느 날인가 하늘이 하얗게 불타오르더군요.
그 빛을 보고 제 눈도 타버렸습니다. 아팠어요. 죽을 것처럼.
그런데 반대로 속은 뻥 뚫리더군요.
절반만 이어진 핏줄 탓에 불량품 취급을 받던 몸이었어도 저주는 제대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기뻤습니다.」
저주반사 탓인지 남자는 제법 긴 세월동안 고통 받았다.
그래도 후회 한 점 없는 인생이었노라 웃으며 말하고 1962년 2월 암으로 사망했다.

빈집 털이범 쳐다보듯 하고 있는 고등학생 주술사 두 명을 무시하고 이이지마는 책상서랍을 거꾸로 뒤엎었다.
라이터니 볼펜이니 하는 잡동사니가 잔뜩 떨어졌을 뿐으로 눈에 띄는 물건은 없었다.
서류문진으로 쓰는 나무 조각에 잠시 시선이 머물렀으나 크기나 모양새가 잘린 손가락 부위에 대고 꿰매기엔 무리라서 곧 눈을 돌렸다.

『저기, 그보단 이런 게 돈이 되지 않겠어?』
고죠 사토루가 14K 금으로 만든 닙이 달린 만년필을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완전 도둑 취급이었다.
『썩을. 너는 만년필로 신의 머리를 자를 수 있어?』
쏘아붙이자 고죠 사토루는 달라진 표정을 하고 만년필을 얌전히 내려놓았다.
그럴 리가요. 펜은 총보다 강하다지만 무리.

『뭘 찾고 있는 건지 대충 짐작이 가. 그런데 찾고 있는 게 왜 교장실에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번에는 게토 스구루가 질문했다.
바닥에 뿌려진 잡동사니를 헤집고 있던 이이지마 하나에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뺨을 붉혔다.
어쩐다. 저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면 흑역사 강제 공개다.
1학년 입학시절부터 줄곧 곳곳을 뒤져봤다는 고백을 하기는 부끄러웠다. 남자 화장실은 물론이고 표본실에 과학실험실, 설비시설과 옥상, 자판기 안쪽까지 전부 훑었다. 아직까지 털어보지 못한 장소는 일반 학생이 출입하기엔 모양새가 어색한 교장실과 숙식실 정도다. 신발장도 전부 열어봤고 중간고사 시험지를 보관하는 금고도 열어봤다. 집중하여 개(開), 라고 주언하면 열지 못할 것이 없었다.

『장래 희망이 도둑이세요?』
『아니거든! 내가 원한 건 그저 이 학교 어딘가로 숨겨져 있다던 특급의 주물이지 돈이나 귀중품 같은 건 아니었어. 그리고 주물도 봉인술식만 빼고 어차피 제자리에 돌려놓을 작정이었다고!』
『어머~ 그거 엄청 위험한 발언이네.』
선글래스를 슬그머니 콧잔등 아래로 내려쓴 고죠 사토루는 파랗게 빛나는 육안의 눈동자로 이이지마 하나에를 응시했다.

타락한 신을 조복하는데 앞서 당대 주술사들이 특급의 주물을 사용했다는 추측은 누구나 가능했다.
주술계에 남겨진 기록이 전무한 관계로 그게 어떤 종류였고, 어떤 방식으로 쓰였는지는 불명이지만.
요점은 그 물건이 신을 조복하는데 사용되었을 정도의 특급이었다는 거다.

『그걸 봉인술식만 몰래 빼서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을 생각이었다고 말한 거냐, 너?』
『윽.』
하늘색의 눈동자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마가 닿을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이제 와서 일반인이라서 난 그런 거 몰라요, 따위로 변명하려는 건 아니겠지? 이 죽되만(죽이 되다 만) 인간아. 주물이라는 건 저주라고, 저주. 물리적으로 실체를 가진 매우 강력한 저주. 그걸 봉인한 술식을 빼버리고 제자리에 돌려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혹시 전교생을 몰살하고 싶었던 거냐?』
『아니. 어. 그건.』
『신을 죽일 정도의 저주를 학교에 풀어놓고, 봉인술식만 빼돌려 자기가 써먹을 심보였다고? 진심이냐.』
『아니. 저. 그게.』
『어머나. 이 새끼, 이제 와서 영혼 탈곡한 표정 짓는 거 봐라. 아~무 생각 없었어요?』
『네. 음. 아니.』
『아이고, 이걸 어쩐다. 아이고, 이걸 진짜 어쩐다.』
동물을 잘 모르는 사람이 고양이를 들어 올리는 자세로 – 겨드랑이 사이로 팔을 넣고는 번쩍 들어 올려 앞뒤로 흔들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중학생 치곤 키가 큰 편에 속했지만 고죠 사토루가 그렇게 흔들자 발이 땅에 닿지 않아 허공에서 대롱거릴 수밖에 없었다.

『잘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습니다.』
『무지를 반성해라.』
『반성합니다.』
『좋았어. 그럼 지금부터 넌 고죠 사토루 꼬붕 1호다.』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흘러가는 건데.
계속해서 흔들리면서 이이지마 하나에가 소리 없이 절규했다.

Posted by 미야

2021/04/14 17:29 2021/04/14 17:29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2187

Leave a comment

※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보건실 벽으로 커다랗게 구멍이 뚫렸다.
1학년 2반 세리자와 아유미와 반 급우인 와타나베 다이치는 신발장 뒤에 숨어 최대한 몸을 웅크렸다.
구멍으로 들어온 사람크기 만한 개구리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는데 잡히면 뼈도 못 추릴 거라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그것들은 사실 개구리라고 할 수도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몸집과 달리 유난히 길고 가느다란 팔과 다리의 모양새가 개구리를 연상시켰을 뿐, 기분 나쁜 파란색의 피부와 뻣뻣해 보이는 털은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했다.

이족보행을 하는 괴물이 제법 가까운 곳을 지나가면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냈다.
세리자와와 와타나베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바닥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숨을 참았다.
겁이 많은 와타나베는 속으로 귀명무량수각 진언을 외우며 눈도 감았다. 불교가 아니라 무교였지만 긴장해서 토가 나올 것 같으면 손바닥에 사람인(人) 글자를 반복해서 쓰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 효과가 있다는 말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진언의 의미도 잘 몰랐지만 어쨌든 그렇게 했다.

세리자와가 와타나베의 옆구리를 찔렀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차라리 교실로 돌아가자, 와타나베.」
「다리가 풀렸어. 교실까지 가기 전에 당할 거야.」
「그럼 하나, 둘, 셋을 세고 화장실로 뛰자.」
「못 한다니까!」
괴물 양서류들은 보이는 족족 아이들을 씹지도 않고 입에 넣었다. 오로지 먹는 일에만 관심이 있어 일단 배가 빵빵해지면 무거워진 몸을 질질 끌며 구멍이 뚫린 보건실로 되돌아갔다. 10년치 앙화가 한꺼번에 내리는 건지 그렇게 잡혀 먹힌 학생들 숫자가 지금까지 열이 넘었다.

《찾았습니다. 인간, 인간... 여기에 있습니까?》
『히익! 들켰다. 뛰어!』
머리 위에서 소리가 들려오자 혼비백산하여 뛰쳐나갔다. 천장에 표주박처럼 매달려 있던 것이 끈적거리는 점액질로 뒤덮인 팔을 뻗어 두 사람의 머리를 잡으려 했다. 덕분에 정수리 털이 몇 가닥 뽑혀나갔고, 와타나베는 「대머리가 된다고 해도 괜찮아!」 고함치며 남자화장실 쪽으로 몸을 던졌다.
위기의 순간에서도 세리자와는 남자 화장실이 아닌 여자 화장실로 방향을 틀었는데 스커트를 입고 소변기가 있는 곳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찌 보면 전화위복이었다. 개구리는 그 정체가 수컷이었는지 와타나베 뒤를 따라갔다.

화장실 출입문을 재빠르게 걸어 잠그고 숨을 몰아쉬자니 누군가 밖에서 야단을 쳤다.
『망할 중학생들. 살려주겠다는데 왜 도망가는 거야!』
남자 화장실 방향에서 우당탕 물건 떨어지는 기척이 들려왔다. 양동이가 떨어진 것 같았다.
『야, 거기 너. 나머지 다 어디로 튀었어. 어?!』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이것들이 단체로 누굴 살인자로 만들고 앉았어. 누가 죽인데?! 입 다물고 썩 기어 나오지 못해?! 자, 자, 개구리(カエル카에루). 되돌아가라(返る카에루).』
다시 요란한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세리자와는 와타나베의 비명에 귀를 틀어막은 채 제일 뒤편으로 위치한 칸막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썩 좋은 판단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스릴러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곧잘 나오곤 했다. 세리자와는 영화 속 등장인물을 흉내 내어 변기 커버를 밟고 그 위로 올라갔다. 체중이 얼마 나가지 않았기에 변기가 깨질 걱정은 없었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변기를 밟은 발가락에 힘을 주고 자신의 체중을 헤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이어트를 하는 건데.
입술을 깨물고 있자니 와타나베의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끝마무새로 개굴거림이 들려온 건 아마 착각이 아닐 거다.

『열두 명 구조 완료. 여자 화장실에도 누가 숨은 것 같던데.』
『미치겠구만. 아니 그러니까 살려주겠다는데 왜 숨어.』
여자 화장실 출입문을 벌컥 열고 – 안에서 손잡이 장치를 돌려 잠궜다는 건 그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것 같았다 – 굳이 내부까지는 들어오려 하지 않으면서 외쳤다.
『맨 뒤 칸에 숨은 분. 똥 싸는 거 아니라는 거 압니다. 빨랑 나와. 3초 준다. 셋, 둘, 하나... 하나 반.』
『자, 잠깐!』
『못 기다려. 개구리(カエル카에루). 되돌아가라(返る카에루).』
말이 끝남과 같이해서 커다란 검은 보자기가 머리 꼭대기서부터 씌어졌다. 아니, 그건 결코 보자기가 아니었다. 촉감이 미끄덩했고 축축했다. 꼭 입안 점막 같은 느낌으로... 깨닫고 세리자와 아유미는 비명을 질러댔다. 사람만치 큰 개구리가 통째로 그녀를 삼켰다.

오늘의 운세는 개구리에게 잡혀 먹히는 겁니다.

소리를 지르면 지를수록 숨이 막혀와 나중에는 꺽꺽 소리밖엔 나오지 않았다. 질식한다는 느낌에 손으로 목을 감싸 쥐었다. 사람을 삼킨 개구리가 점프를 한 건지 몸이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위아래 방향이 뒤집어졌다. 머리로 피가 쏠리자 질식의 위기는 그렇다 치고 이번엔 멀미가 났다.
그만하라며 내벽을 발로 찼다. 그래봤자 흔들림은 더 심해져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버스 맨 뒷좌석에 앉은 것처럼 온몸이 들썩거렸다.
고개가 꺾어지는 느낌에 정신을 놓고 기절하려던 찰나 개구리가 아닌 개구리가 구어억 하고 세리자와를 토해냈다.
『......』
침 범벅인지 양서류의 위산 범벅인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냄새 지독한 점액질을 뒤집어쓴 상태였다.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옆을 보니 엉덩이를 하늘로 들어 올린 괴상한 자세로 와타나베 다이치가 엎드려 뻗어 있었다.
위를 보니 하늘이다. 운동장이었다.
주변으로는 아타나베 말고도 2학년과 3학년 학생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여름더위에 상한 오이냉국 악취가 진동했다.

『형편없지는 않네.』
주령 조종술에 따라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학생들을 삼키고 있는 개구리 모양의 주령에 고죠 사토루가 감탄했다.
개구리(カエル카에루). 되돌아가라(返る카에루).
술사인 게토 스구루의 지시에 학생들을 삼킨 주령은 들어왔던 보건실 구멍으로 다시 빠져나가 뱃속에 든 내용물을 착실하게 게워냈다. 냄새가 지독하고, 정신적 충격이 클 거라는 단점을 빼면 인질 구출용으로 써먹기에 제법 안성맞춤이었다.
『만약 뱉지 않으면 어떻게 돼, 스구루? 안에서 천천히 소화가 되는 거야?』
『산소부족으로 죽고 나선 시랍으로 변해. 처음 저걸 잡았을 적에 죽은 지 10년은 넘은 어린애의 하반신이 거의 외형 변화 없는 모습으로 나왔어.』
『아이구야.』
감탄도, 탄식도 아닌 어중간한 한 마디를 던지면서 고죠 사토루는 감각을 기민하게 세웠다.

인간에게도 주력은 있다. 따라서 주력을 추적하면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지금도 스무 명이 족히 넘어가는 인원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중이다. 진짜지 얕볼 수 없다. 궁지에 몰린 중학생들은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마냥 매우 빠르게 자리를 옮겨 다녔다.
여기에 게토가 풀어놓은 6급 주령까지 사방팔방 뛰어다니고 있어서 완전히 뒤섞였다. 이들에게 각각 빨간색 점을 붙이면 팝콘이 튀겨지는 모양새가 될 것이다.
문제는 그 중에서 인간이 아닐 거라 추측되는 대량의 주력은 느껴지지 않았다는 거다. 이미 안전한 곳으로 도망을 쳤거나, 학생들 틈새에 제대로 숨었다.
『젠장... 머리를 쓰는 놈이잖아. 녀석이 의도한 게 이거라면 성공했네.』

교장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내부를 살폈다.
주술고전이나 일반인 중학교나 교장실의 분위기는 그다지 차이가 없었다.
허세 가득한 커다란 책상, 뭐에 써먹을 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깃발, 역대 교장들의 사진들이 벽에 붙었고, 장식장에는 상패와 트로피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책상에 놓여있던 전화기를 들어 올리자 정상적인 신호음 대신 자글자글 끓는 소리가 났다.
바로 내려놓고 한숨처럼 흠 소리를 내고 있는데 선풍기 미풍처럼 주력을 살살 내뿜고 있는 그.것.이 눈에 들어왔다.
부적이었다.

『미쳤다.』
교장은 제정신이었던 걸까. 알고 그런 거라면 미친 사람이 분명했다.
방의 네 방향에 부적을 붙여놓아 주력의 힘이 방안을 회전하며 움직였다. 미약하긴 했어도 정체가 저주인 것을 방안에 가둬놓고 빙빙 돌린 셈이다. 그런 방안에 앉아 업무를 본다? 소화불량은 기본으로 앓았을 거다.
혹시나 싶어 의자 방석을 들춰봤다. 역시나. 방석 아래 신사에서 사가지고 왔을 법한 부적이 달려 있었다.
이쪽은 벽에 붙은 것과는 달리 거의 가짜나 다름없었는데 비유하자면 물을 잔뜩 탄 간장 같아서 맛으로나 향으로나 조미료라 불릴 만한 종류가 아니었다. 기념품처럼 파는 종류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부적 마니아인가. 덕분에 헷갈렸잖아!』
스티커처럼 창문에도 붙여놓은 걸 보니 그쪽으로 아주 푹 빠진 사람인 모양이었다.
있는 대로 짜증을 내며 교장실에서 빠져나왔다.

Posted by 미야

2021/04/13 11:02 2021/04/13 11:02
Response
No Trackback , No Comment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2186

Leave a comment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90980
Today:
109
Yesterday:
33

Calendar

«   2021/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