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만화 원작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폐가 아팠다.
숨을 참은 채 무리하게 전력질주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엎어진 자세에서 등을 밟혀 그런 건지 구분이 잘 가지 않았다.
아마도 후자 탓이 더 크지 않을까 싶었지만... 3학년 선배가 더 힘을 주어 밟은 탓에 생각의 흐름마저 끊겼다. 벌레처럼 밟혔다는 굴욕감 이전에 제대로 숨을 쉬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눈앞이 하얗게, 검게, 다시 하얗게 변했다. 사진기의 플래시 라이트가 정면에서 터진 것 같았다.
퍽, 하는 소리와 같이해서 등가죽이 타들어갔다. 이번엔 걷어찬 거다.

『버르장머리 없는 후배 같으니. 누구냐. 누가 1학년의 콧쿠리님이냐고.』
하시모토의 바람과는 다르게 이시즈미와 스가와라는 멀리 도망가지 못했다.
저 혼자 살겠다며 도망치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대항할 용기나 의지 따윈 아무리 끌어 모아봤자 티끌이어서 등을 밟힌 채 쓰러진 하시모토를 도와줄 수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거다.
3학년은 덜덜 떨고 있는 이시즈미를 눈여겨 본 뒤에, 다시 말문이 막힌 것처럼 보이는 스가와라를 쳐다봤다.
『그래서 누가 콧쿠리님이냐고.』

대답은 반장이 했다.
『제가 1학년의 콧쿠리님일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까? 선배님.』
숨을 헐떡이며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콧쿠리님을 다치게 하면 앙화가 내립니다.』
그 즉시 3학년의 안색이 바뀌었다. 짜증이 분노로 바뀌었다.
『시끄럽다, 1학년. 나는 안 모시는 쪽이라고!』

누구는 콧쿠리님이 비가 오는 날에 해가 날 것을 기대하며 처마 아래 걸어두는 테루테루보즈 인형과 똑같은 거라고 했다.
그런가보다 싶었다. 그는 이 미신 같은 짓거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쪽이었다.
어쩌다 매점에서 마주쳤던 3학년의 콧쿠리님은 보통 체격에 평범한 인상이어서 섞어놓으면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오죽하면 등에다 파란 점을 찍어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까. 자꾸 실수로 말을 걸게 된다면서 같은 학급 아이들이 불평했다.
표정이 어두웠던 것만 기억났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interrupt, schedule, restaint, 어쩌고 하면서 영어 단어를 중얼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친구 말에 따르면 공부는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다고 했다.
「올해는 잘못 뽑은 거 같아.」
「괜찮아. 그냥 이대로 별 일 없으면 되는 거야. 재작년의 악몽 같은 상황만 안 벌어지면 돼. 이번 콧쿠리님은 옥상에 올라가 다 죽어버려 고함칠 성격은 아니니까 그걸로 된 거야.」
「아, 몰라. 솔직히 내가 콧쿠리님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엔 안 들어.」
「대신 숙제가 없잖아. 선생님들께 말만 하면 답안지도 보여 준다더라.」
「그건 헛소문.」
「숙제만 없어도 어디냐. 수학 숙제 너무 많아 힘들어.」
「차라리 과제에 치어 죽지. 그냥 왕따잖아. 나 같으면 집어 치우고 전학 갈 거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3학년의 콧쿠리님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듣자하니 가게도 팔고 아예 가족 전부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버렸다고 했다.

『또 콧쿠리님 모시기를 했다고 들었다.』
이후로 체육 교사 히무라는 돌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을 수준으로 기합 넣기 체조를 시켰다.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 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언제까지! 언제까지 그럴 거야. 저주 따윈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인간의 나약한 마음으로부터 생겨나는 거다. 그러니 너희들의 나약함을 체력으로 바로 세워라. 기합을 넣어서 하나! 기합을 넣어서 둘!』
원래부터 귀신같은 건 믿지 않던 입장에선 히무라 선생님의 비난은 억울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전학을 간 콧쿠리님의 스케치북이 치워지지 않고 미술실에 남았다는 얘기가 소문처럼 돌았다.
수채화물감으로 까맣게 붓질을 한, 사진을 베껴 그린 풍경화라고 했다.
「본인도 까먹고 갔는데 그냥 버리면 되지.」
그가 그 말을 꺼냈을 때 친구의 표정이 굉장했다. 일단 땀을 엄청 흘렸다. 그리고 담임으로부터 부모님을 모셔 오라는 말을 들은 것처럼 굳었다.
「그런 말 하지 마. 그걸 어떻게 치워.」
「왜 못 치워?」
「아, 그랬지... 너는 안 모시는 쪽이지. 속 편한 놈. 것보다 올해 겨울에 닌텐도 DS가 나올 거래.」
콧쿠리님은 서로에게 불편한 화제였기에 친구는 서둘러 말을 바꿨다.

그림은 계속해서 치워지지 않았다.
미술부 활동을 하다 잠시 자리를 떠나기라도 한 것처럼 스케치북은 자연스럽게 펼쳐진 채로 방치되었다.
어째서인지 금방이라도 그림의 주인이 자리로 돌아와 붓으로 칠을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물통과 물감, 붓 같은 도구들이 정리가 되지 않았고, 검게 칠해진 그림은 아직 미완성이었다.
스케치북을 슬쩍 들었다가 도로 제자리에 놓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치울 수 없다는 뜻이 무엇인지 그제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징그러워.」
꺼림칙한 손을 5분 내내 비누칠을 하며 씻으며 다시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다짐했다.
외면하면 남의 일이다. 그는 모시지 않는 쪽이었다.

『쟤가 콧쿠리님이에요!』
그때 이시즈미 루미가 스가와라 미즈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자질을 했다.
『다른 애들에게 물어보시라고요! 진짜에요. 쟤가 콧쿠리님이에요!』
선배들이 스가와라를 데리고 가서 무슨 짓을 저지르든 말든 이시즈미는 아무 상관없었다. 친하게 지낸 것도 아니고 같은 동네에 살고 있지도 않았다. 나자렛 예수를 팔아 은 30냥을 받았는데 콧쿠리님을 팔아 친구를 구하는 건 왜 안 되는가.

그런데 선배는 하시모토 리코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3학년 무리들 쪽으로 돌아가려 했다.
『리코는 아니에요!! 진짜에요.』
싹싹 빌어도 3학년은 듣는 시늉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말리려고 하는 이시즈미의 입 부분을 주먹으로 치기까지 했다.
치아가 부러진 것 같은 느낌에 턱 부분을 감싸 쥐고 소리도 못 냈다. 그저 눈물만 줄줄 흘렀다.

화가 난 3학년들로부터 집단 구타를 당한 나카소네 키요타카는 5층으로 끌려갔다.
체육복을 입은 애가 1학년의 콧쿠리님이다, 1학년 2반이 아닌 척해서 죄송하다, 반복하여 용서를 구했지만 선배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도대체 뭘 원하는 건데. 그저 분풀이가 하고 싶었던 건가. 눈알을 굴려 눈치를 보다가 시선을 느낀 선배가 흰자위가 보이도록 희번덕 노려보자 그 짓도 관뒀다. 지금은 그냥 무조건 빌어야 할 때였다.
『얘 진짜 웃기네. 네가 뭘 잘못했는데?』
『글쎄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용서를 구하는 거니?』
『가르쳐주시면 사과할게요, 선배님.』
웃는 얼굴에 침 뱉지 못한다는 속담을 떠올리며 어떻게든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애를 썼다. 통증 탓에 기괴한 웃음이 되어버렸지만 거울이 없으니 알 길이 없었다. 게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울상으로 바뀌었다.
웃음은 여유가 있을 적에나 나오는 거다, 그 말을 누가 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담임이었다. 「웃음은 여유가 있을 적에나 나오는 거다. 성적이 좋아야만 성적표를 보며 웃을 수 있는 거다. 너는 웃을 자격이 없다.」 배불뚝이가 볼펜으로 머리를 툭툭 치며 했던 말이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다고요!』
카제야마 중학교는 원래 5층 건물이었다. 과거형으로 말해야 한다는 점이 아찔하지만, 5층 건물이었다.
5층에서 옥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일단 초록색으로 빛나던 비상구 표지판이 사라지고 표지판으로 바뀌었는데 적힌 내용은 층수를 나타내는 숫자가 아니고 유계(幽界)라는 글자였다.
이쪽이 현계이면 저 아래는 저승이라는 의미인지 5층과 6층의 경계선엔 까드득 뿌르륵 소리를 내는 이상한 것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위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상한 것들이라는 것 말고는 다른 표현이 불가능했다. 눈알은 개구리처럼 컸고, 피부는 양서류처럼 반질반질하면서 색이 파랬다. 덩치는 사람 크기인데 다리와 팔은 빗자루처럼 가늘었다. 그런 게 한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까드득 뿌르륵 요상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던져버려.』
『이러지 마세요! 아아악!』
떠밀려지자 아래에서 서성이던 것들이 저마다 난리가 났다.
나카소네는 울부짖었다. 팔을 뻗어봤지만 잡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개구리처럼 생긴 괴물이 빠르게 저를 삼켰고, 보고 있는 선배들은 하나같이 무심했다.

붙잡혀 온 하시모토 리코가 그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카소네가 눈앞에서 통째로 잡아 먹혔다.
『무슨 짓을...』
『어쩌겠어. 삼킨 놈은 사라지거든. 봐,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리지? 애들 일곱을 삼키고 괴물 일곱이 없어졌어. 이제 하나 더 사라졌고.』
선배들은 남은 괴물의 머리 숫자를 헤아리다 이제 열 하나가 남았다며 별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그리고는 반항하다 벗겨져버린 나카소네의 한쪽 실내화를 무슨 쓰레기 치우듯 아래를 향해 마저 던져버렸다.


※ 게토 스구루, 여덟 명 구조 완료.

Posted by 미야

2021/04/28 14:38 2021/04/28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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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 설정을 가져온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주술회전은 애니 초반부만 감상한 상황이라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저승꽃 쓰다 탈주 비슷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완결 냅니다. 저승꽃도 쓰는 중이에요.

 
다케다 씨가 몸살로 뻗어 후로다니 료칸 출장의 건이 내 몫으로 떨어졌다.
불만은 없었다. 기차를 타고 왕복 이틀 일정에 주말이 온전히 날아간다고 해도 목적지가 고급 료칸이라 고즈넉하게 여행을 간다는 기분도 들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 그러니까 1950년대에는 문인들이 글을 쓴다며 통조림을 자처하는 장소였다는 설명을 사전에 들었기에 은근 기대도 컸다.
광고사진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흑백 사진과 벽에 장식된 설국 소설책이 배경으로 보였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후로다니 료칸에 통조림이 되어 글을 썼다고 착각할 법한 연출이었다. 하지만 소설 설국이 사진에 나온 이유는 그 책의 줄거리가 시마무라라는 주인공이 설국의 한 온천장에서 아름다운 게이샤 고마코와 부엌에서 일하는 요코와 삼각관계를 이룬다는 줄거리 탓일 거다. 이렇게 말하니 책의 내용을 이상한 쪽으로 함축시킨 것 같다만... 여하간 료칸이었다.
그리고 그 료칸에서 사용할 손님용 그릇을 소개하고 주문을 받는 것이 내 일이었다.

약간의 세면도구와 갈아입을 옷, 전문 카탈로그를 꿰차고 목적지에 도착한 건 오후 7시가 다 되어서였다.
온천장 주인과의 면담은 오후 7시 30분으로 예정되어 있었기에 예정대로 알맞은 시간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서양식 인테리어가 된 사무실로 향했고,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르는 동안 녹차를 대접받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케다 씨의 몸살은 순전히 핑계였고 그 양반, 아무래도 영감이 있는 쪽이 아닌가 싶다.
늦은 9시 27분, 몸이 갈기갈기 찢긴 상태로 널브러져 머리의 절반이 주령에게 씹히는 중이었다.
다케다 씨는 이 온천장에 주령이 나온다는 낌새를 챈 것 같다. 능력 좋다.

숨은 이미 끊어졌지만 어렵게 눈알만 움직여 날 씹고, 뜯고, 맛보고 있는 주령을 쳐다봤다.
2급 정도는 되어보였다. 하지만 나는 그 방향으로 전문가가 아니다. 그리고 지금 주령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기 때문에 – 아, 이미 죽었다. 궁지에 몰린 탓에 시각화된 형체를 볼 수 있는 거였다. 따라서 지금 내 입장에서 저놈이 2급이네 1급이네 따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 어. 어...》
색이 붉었다. 오니 같은 외견이다. 지옥에서 업보가 많은 혼령들의 사지를 찢는 오니처럼 생겼다.
웃기게도 에도시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촌마게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에게는 표정이 있었다. 전쟁터에서 어린애를 강간하는 눈빛을 하고 놈이 내 눈알을 삼켰다.
암전.

숨이 끊어져본 적은 오랜만이다. 도살장에 끌려간 돼지 수준으로 몸이 해체된 것도 진짜 오랜만이다.
1944년인가 대략 그 즈음에 수류탄을 정면에서 맞고 폭사당한 적이 있었는데 객관화를 하자면 그때보다 지금 상태가 더 나빴다.
아마도 간이었을 덩어리가 조각으로 천장에 이리저리 흩뿌려졌다. 응고하기 시작한 피가 일종의 접착제 역할을 해서 내장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살이 많은 허벅지부터 엉덩이 쪽은 침대 아래로 굴러갔기 때문에 주령의 눈에서 벗어났다. 대신 녀석은 가슴에 손을 넣어 심장을 후벼 파고는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갈비뼈를 좌우로 벌려 맨손으로 뜯어냈다.
아, 좀!
후룩후룩 국물 마시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이팔국수 먹어치우듯 하고 있다.
님아! 부탁이니 뼈는 남기 삼!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그때 물그릇 안을 가득 채운 물이 찰랑거렸다.
흠칫하고 깨닫고 보니 저승도 아니고 이승도 아닌 애매한 공간에 일명, ‘좌절은 금지’ 포즈로 엎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듣기에도 얼빠진 엥 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자 뼈로 이루어진 언덕이 보였고, 그 꼭대기엔 소매가 넓은 기모노를 입은 자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렇게 앉으면 옷자락이 벌어져 남이 봐서는 안 되는 부분이 드러날 수도 있는데...
하찮은 생각을 하며 내 얼굴을 더듬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주령에게 뜯겨나간 머리가 제대로 잘 붙어 있었다. 턱을 좌우방향으로 움직여도 보고 뺨을 잡아당겨도 보았는데 정상이었다. 방금 전에 주령이 씹어 삼켰던 안구도 제 위치에 있었다.

엉거주춤 일어나 주변을 더 살폈다.
아무래도 이승은 아닌 듯하다. 일단 산처럼 쌓아올린 뼈만 봐도 이승 느낌은 아니었다.
뿔이 달린 짐승의 머리뼈부터 인간의 두개골까지 종류도 무궁무진했다. 하나같이 살이 깨끗하게 발라져 하얗게 반질거렸는데 덕분에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형 느낌도 없진 않았다.

그 해골의 꼭대기에 앉은 남자가 내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나는 최대한 공손하게 목소리를 냈다.
『저, 혹시 염라왕이십니까. 저는 이시야 히로시라고 하는 사람으로 어쩌다보니...』
말하고 보니 비즈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내심 당황했다. 실례지만 사장님 되십니까, 거의 그 느낌이었다. 8년 가까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가마에서 구워낸 그릇을 팔고 다녔더니 뼛속까지 세일즈의 향기가 스며들었나 보다. 나도 모르게 적당히 눈웃음을 쳐가며 상대의 비위를 맞추려 하고 있었다.

《이시야 히로시... 흐음. 그 이름이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기모노의 사내가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나는 염라왕이 아니다.》
남자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도합 네 개의 눈이었다.

나는 바짝 엎드렸다. 이승이 아닌 곳에서 외눈박이 거인을 만나도 문제가 큰데 숫자가 더 많아져 네 개의 눈이면 제법 심각했다. 전자가 포세이돈의 아들이라면 후자는 무려 저주의 왕이다.
『거짓을 고한 것은 아닙니다. 이시야 히로시, 지금은 그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긴 시간이 제법 흐르긴 했지.》
『송구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나의 생득영역이다. 여기까지 무슨 행차이신가, 그대?》
『어. 그게 말입니다. 어쩌다보니.』

이것저것 상품 설명이 길어지면서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져 애매하게 되어버렸다.
가게 이미지와 맞지 않는 네덜란드산 수입품 화이트 본차이나 세트를 고집하던 주인을 만류하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주인의 뜻대로 일본식 도기가 아닌 네덜란드산 그릇을 주문하기로 결정을 봤다만... 버스는 40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고, 지금부터 번화가로 나가 숙박업소를 찾다 보면 까딱하다 노숙을 할 수도 있을 거라며 백발의 료칸 주인이 입을 가린 채 호호 웃었다.
‘어차피 이곳도 숙박업소잖아요?’ 료칸 주인의 호의에 제일 싼 가격의 1인 룸을 10% 할인된 가격으로 하루 머물기로 하고 여장을 풀었다. 식사는 미리 하고 왔기에 잠만 자고 아침 일찍 택시를 부를 생각이었다. 내 월급으로는 이곳에서 요리를 주문하는 건 무리다. 한 끼에 3만엔을 쓰는 사치를 부리기엔 지갑 사정이 좋지 않았다. 신축 빌라로 이사를 하면서 저축한 돈의 절반을 써버렸다.

기차를 타고 도쿄로 돌아가기 전에 아침 겸 점심 식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침대에 누웠다.
피곤했는지 졸음이 오려 했다.
씻고 싶다 중얼거리며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조작하여 텔레비전을 켰다. 늦었지만 회사에 미팅 결과를 알리기 위해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고 – 순간 천장이 꿀렁거렸다.
『아니, 지금 생각해도 빡치네. 영업 중인 고급 료칸에 왜 주령이 돌아다니는 거냐고.』
긴장을 풀고 침대에 늘어져 있던 상황에서 공격당해 곧장 머리가 부서졌다.
『방 천장에 시체라도 숨겨놨나.』
주룩 흘러내린 그것이 한 입에 가슴 윗부분까지 씹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뭐, 그렇게 해서 사고로 숨이 끊어졌습니다만.』

해골을 쌓아올려 만든 산의 높이가 제법 되는 관계로 이쪽에서 양면 아수라의 표정까지 읽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저주의 왕은 프라이드가 높아 함부로 용안을 쳐다보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
고개를 들어 빤히 쳐다보면 기분이 언짢아진 분이 손짓 하나로 2차로 내 목을 날려버릴 거다.
시선을 내리깐 모양새에서 다시 영업용 접대미소를 지었다.
사장님, 일부러 그런 거 절대 아니고요.
『폐를 끼쳤습니다.』
님의 생득영역에 제가 왜 들어왔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니다. 이건 내가 사과해야 할 부분 같군.》
저주의 왕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긋나긋했다.
하지만 나는 저 고양이를 어르는 목소리 너머로 부드러운 카스타드 크림이 아닌 맵고 톡 쏘는 고추냉이가 알차게 들어 있다는 걸 잘 안다. 맛있게 생긴 과자라며 덥석 베어 문 날엔 입안에서 붉은 지옥이 펼쳐질 거다. 1에서 10까지 번호를 매기면 9번 정도의 맵기다.
10이 아니라서 다행 아니냐는 한가로운 소리는 하지 말자. 저 양반, 지금처럼 섹시한 목소리로 ‘죽으렴.’ 소곤거리고는 해일처럼 밀려드는 주술사들을 가루로 빻은 경력이 있으시다.

《주물로서 료칸에 숨겨둔 내 손가락을 주태가 겁도 없이 집어삼킨 모양이야. 그대는 운이 나빴어.》
『에?』
《들은 적 있을 거야. 저주가 심한 장소에 저주를 물리친답시고 식을 써서 주물을 배치하는데 이곳에 자리 잡은 주물은 내 잘린 손가락일세. 가끔 실력 처지는 주술사가 게으름을 부리면 지금처럼 역효과가 나기도 하지. 아아, 진짜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라니까.》
투덜거리던 저주의 왕이 손가락을 딱 소리가 나게끔 튕겼다.
《벌레는 서비스로 내가 처리를 해줌세. 그러니 그대는 그만 현세로 돌아가 보아. 오랜만에 얼굴을 보아 반가웠네, 불생자여.》
『에?』
료칸에 주물이 안배되어 있었다던가, 그 주물이 아수라의 손가락이라던가 하는 건 스치고 지나갔다.
놀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아니, ‘서비스’ 라는 현대 용어를 천 년 전에 스러진 양반이 어떻게 알고 쓰는 거래? 실화냐.

Posted by 미야

2021/04/26 15:27 2021/04/26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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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저, 근데 이거 피폐물입니다.


세 사람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휴지? 방금 쟤 휴지라고 말한 거 맞아?

반장을 알아본 스가와라 미즈키가 얼굴을 붉혔다. 집에 혼자 있는 줄 알고 가면라이더 주제가를 부르다가 동생에게 면박을 당했을 때처럼 큼, 이러고 헛기침도 했다. 엉덩이에 힘을 잔뜩 주고 코타츠 안에서 방구를 뀌다 들킨 것처럼 부끄러웠다.
방구 냄새 지독하다 세 사람이 동시에 인상을 찌푸리자 스가와라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어, 그게. 하나에 선배를 찾는 중이라서.』
『같이 있지 않았어?』
『도중에 엇갈렸어.』

집에 전화를 걸어야겠다며 이이지마 하나에가 유선 전화기가 있는 행정실로 들어갔다.
개인적인 통화를 옆에서 듣기 뭐했던 스가와라는 예의를 차려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기다리겠다고 말은 해놓고 얼른 화장실에 들어갔다. 장소가 교직원 화장실인 만큼 평소 학생 출입이 제한된 곳이었지만 서둘러 코피가 번진 얼굴을 정리하고 싶은 마음에 수도꼭지부터 열었다.
굳은 피를 지워내다 보니 다음에는 옷에 떨어진 피가 신경 쓰였다. 상의는 체육복으로 갈아입었지만 교복 스커트는 그대로였는데 방울방울 떨어진 피가 생리 혈을 연상시켜 보기가 흉했다.
하지만 피는 잘 지워지지 않는다. 물을 묻혀 첨벙거려봤자 지저분하게 얼룩이 번지기만 했다.
에라이 망했네 혼잣말을 하며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는데 당혹스럽게도 근처엔 아무도 없었다. 이이지마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쭈뼛거리고 선 스가와라는 잠시 생각하다 손에 묻은 물을 털면서 현관을 통과해서 밖으로 나갔다.

『뭐?! 밖으로 나갔어?!』
『아이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질러.』
그러다 실내화를 신은 채라는 걸 깨닫고 신발을 갈아 신기 위해 다시 안으로 향했다. 선생님에게 걸리면 혼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그게 문제냐! 아니, 이 녀석 원래 이런 성격이었나?! 내가 방금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몰랐구나... 나카소네. 쟤 은근 블랙홀이었어.』
블랙홀이 뭘 말하는지는 모르겠고, 어쨌거나 신발장이 전부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엄청 무거운 신발장을 혼자 일으켜 세운다는 건 불가능했기에 포기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엄청 큰 소리가 들려와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는데 아마 신발장이 쓰러질 때 난 굉음이었나 봐.』
『미치겠다. 그보다 보이지 않는 그물 같은 거 안 느껴졌어? 투명한 막 같은 거. 물렁거리지만 절대로 뚫고 나갈 수 없는 거!』
『보이지 않는 그물? 그게 뭔데. 거미줄? 아무것도 못 느꼈는데?』
반문하는 모양새를 보아하니 스가와라 미즈키는 아무래도 나갈 수 있는 쪽이었던 것 같다.

혈압 상승으로 나카소네의 콧구멍이 커졌다. 콧쿠리님과 대화하면 안 된다는 규칙은 진작 까먹었다.
『얘는 진짜! 나갈 수 있었다면서 왜 또 돌아왔는데!』
『나, 화장실 갈 거라고 선배에게 말 안 했거든. 하나에 선배도 내가 없어졌다며 나를 계속 찾고 있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일단 2학년 교실 쪽으로 가봤는데... 생각해보니 선배가 몇 반인지 들은 적이 없지 뭐야. 덕분에 좀 돌아다녔어.』
『아까 휴지, 휴지, 중얼거린 건 뭐야.』
『음, 일종의 주문 같은 거랄까. 안전기원, 만사형통, 운수대통, 이런 의미지.』

초등학교 시절에 메챠걸이 알려준 이야기가 있다.
애들을 잡아간다고 소문이 난 빨간 원피스의 귀신은 아이들에게 가위를 줄까, 풀을 줄까, 휴지를 줄까? 질문을 한다고 했다. 가위를 달라고 하면 입이 찢어지고, 풀을 달라고 하면 목소리를 빼앗긴다. 휴지를 달라고 하면 귀신이 화장실 쪽으로 몸을 돌린다. 이 틈을 타서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나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
『그기 뭐꼬! 너 어디 초등학교 나왔는데. 원래 지우개를 달라고 하는 거잖아. 그러면 받은 지우개로 귀신을 슥삭슥삭. 내 말이 맞지? 루미.』
『유치원 시절에 들어봤어. 나도 지우개라고 들었는데.』
『가위를 든 빨간 원피스 여자 이야기는 잘 알아. 그런데 풀이나 휴지 준다는 건 들어본 적 없는데.』
『동네마다 버전이 달라?』
『어쨌든 휴지는 아니야, 진짜.』
실수로 사투리가 살짝 튀어나왔지만 나카소네와 이시즈미가 도중에 끼어들어 분위기상 잘 넘어갔다. 반장 하시모토 리코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가와라 미즈키는 슬그머니 자기 손등을 꼬집었다.
이상했다. 지금까지 반 아이들과 이렇게 길게 얘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 거기다 시선을 피하지도 않고 똑바로 쳐다보기까지 하고 있다. 어쩐지 꿈이라는 느낌인데 꼬집은 부위가 통증으로 얼얼했다.

하시모토가 투덜거렸다.
『아무튼 이이지마 선배, 2학년 5반이야.』
『5반이었구나! 근데 반장... 예전에 내가 물어봤을 적엔 잘 모른다고 하지 않았어?』
하시모토는 긍정과 부정의 의미로 동시에 써먹을 수 있는 몸짓을 해보였다. 그러니까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스가와라가 어떻게 해석할지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몫이어서 하시모토는 그다지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소리를 내어 말을 해야 비로소 거짓말이 되는 거다.
어차피 현 상황에선 2학년 5반 교실을 제대로 찾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적당히 넘겨도 되었다.

일단 몇 층으로 가야 하는지부터가 숙제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비슷한 내용의 외국 영화가 있었다. 폐쇄된 정신병원이 배경인데 출입구도 없어지고, 복도 끝도 없어지고, 문을 열면 다시 병실이고, 창문은 열리지도 않고...
그리고 정신병동 한 가운데로 환자복을 입은 유령이 -

『저기에 1학년이 있다!』
나카소네가 따돌렸다던 3학년 무리인 듯했다.
겁이 많은 이시즈미 루미가 얼른 하시모토의 등 뒤로 숨어 눈치를 봤다.
무리도 아니다. 일본에서 커터 칼은 누구나 필통 속에 한 개씩 넣고 다니는 평범한 학용품이지만 일부 국가에선 학교에 가지고 오면 안 되는 물건이다. 키티 그림이 그려진 분홍색 커터 칼도 써먹기에 따라 흉기가 된다. 그걸 쥐고 마법사의 지팡이처럼 흔들고 있으면 불쾌한 위협이 되고도 남는다.
해리 포터 원서 독해부에 소속된 하시모토는 마법사의 지팡이 대신 대나무 젓가락을 흔들며 책에 적혀진 마법 주문을 소리 내어 읽곤 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남들이 봤을 적에 상당히 꼴불견이었을 거라는 깨달음이 이제서야 왔다.

『칼은 치워주시죠.』
하시모토의 요구에 3학년 선배는 문구용 칼을 쥔 오른손을 일단 옆구리 쪽으로 내렸다.
칼날이 올라와 있는 걸 보고 하시모토 리코가 다시 요구했다.
『다시 부탁드리겠습니다. 칼은 치워주시죠.』
다행히 3학년은 하시모토의 요구대로 버튼을 눌러 칼날을 숨겼다.

『몇 반이야?』
『3반입니다.』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3학년이 진위를 가늠하며 눈을 가늘게 떠보였어도 약 바른 혓바닥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명찰은 나카소네의 조언을 듣고 치웠고, 솔직히 같은 학년 얼굴도 잘 모르는 판국에 3학년이 1학년을 알아볼 리 만무했다. 하시모토는 두껍게 철판을 깔고 세기의 연기를 이어갔다. 나는 1학년 3반이다.

『1학년의 콧쿠리님이 2반이라던데 혹시 아니?』
『옆 반이니까 잘 알죠. 우리도 찾고 있는 중이에요.』
대답을 하면서 너는 입 뻥끗도 하지 말라는 의미로 스가와라의 발잔등을 지긋 밟았다.
불행하게도 스가와라는 눈치가 수수가루 부꾸미였다. 속된 표현으로 젬병이었다.
『저기, 우리 3반이 아니라 2반인데... 반장?』

100미터 달리기를 몇 초에 뛰었더라, 오른손으로는 이시즈미를 잡았다. 왼손으로는 스가와라를 붙들었다.
튀자.
『저것들 거짓말을 했어. 잡아~!!』
빠르게 달리기를 할 적에 숨을 참는 버릇이 있었다. 폭발적인 에너지를 내뿜으려면 산소가 필요하다고 배웠지만 입술을 오 모양으로 만들어 후욱후욱 짧게 호흡하는 건 어쩐지 임산부 호흡법을 연상시켰다. 그래서 하시모토 리코는 늘 숨을 가득 들어 마신 뒤, 호흡을 딱 멈춘 채 전력질주를 하곤 했다.
함께 뛰어나갈 타이밍을 놓친 나카소네는 3학년들에게 그대로 붙잡혔다. 얻어맞는 모양인지 악, 악, 이러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뒤돌아보진 않았다. 미안한 감정이 들지 않은 건 아닌데 여유 같은 걸 부렸다간 그대로 머리채가 잡힐 거다.

이시즈미의 발이 꼬였다. 비틀거리는 친구가 나뒹구는 일 없도록 오른손으로 더 힘을 줘서 잡아당겼다.
『리코! 리코!』
손목이 나가는 기분이었다. 분수에 넘게 힘을 줘서 그런지 욱신거리는 통증이 송곳처럼 머리를 후벼 팠다.
그런데 복도가 너무 길었다. 100미터 전력질주 골인 점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나쳤다. 숨을 참은 지 이제 16초가 지났다. 얼굴이 검붉게 변했고 세포들이 산소, 산소 입을 모아 외쳤다. 견디지 못하고 입을 벌려 참았던 호흡을 토해냈다. 동시에 눈에 띄게 속도가 떨어졌고 따라오던 3학년이 하시모토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상의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여기까지였다. 하시모토는 쥐고 있던 손을 모두 놓았다.
『달려, 루미! 달려, 스가와라!』
뒤통수로 주먹이 날아왔고 충격으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Posted by 미야

2021/04/23 15:03 2021/04/23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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