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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주술회전은 애니 초반부만 감상한 상황이라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원작에서 이런 부분은 없었어, 라고 해도 용서해주세요.


핸드폰을 열고 글자를 입력했다.
《고죠가 주력으로 일반인을 위협하여 꿀빵을 강탈함》
《고죠가 주력을 실어 발목을 다친 일반인 여중생을 걷어찼음》


『사실과 다르잖아! 스구루!』
삑, 소리가 나도록 문자 저장 버튼을 누른 게토 스구루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성질을 부리고 있는 고죠 사토루를 외면했다. 솔직히 입안이 미어터지도록 꿀빵을 씹어가며「지워, 지우라고!」다그쳐봤자 하나도 안 무섭다. 그보다는 한심해 보였다.
『내 말을 무시하면 안 나눠줄 거야! 나 혼자 다 먹을 거라고!』
아직 고등학생 미성년 신분이라 특급으로 승급하지 않았을 뿐인 1급 주술사, 사실상 일본 내 최강인 무하한과 육안 술식의 소유자가 다섯 살짜리 애처럼 굴고 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게토 스구루는 뒷목을 주물렀다.
망했네, 주술계. 최강자가 저따위여선 일본의 미래는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애초에 나눠먹을 생각 자체가 없잖아, 고죠.』
『그야 스구루는 빵이나 케이크 같은 밀가루 음식을 안 좋아하잖아. 싫어하는 음식을 먹으라고 권하는 건 폭력이지. 위대하신 고죠 사토루님은 평화주의자라서 그런 악질적인 만행을 저지르고 싶지 않아.』
『어라. 방금 북극곰이 춥다고 난로 가져오라는 식의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아무튼 제대로 카드결제 하고 왔습니다, 게토 스구루님. 강탈했다는 거, 취소해주세요.』
설탕가루를 가볍게 털어내고 조림 사과맛 꿀빵을 한 입에 우겨넣었다.
혼자 다 먹겠다는 거, 진심이다. 심지어 즙이 묻은 손가락도 핥아먹고 있다. 그리고는 두뇌의 저장 공간을 낭비해가며 전국 맛 집 리스트를 갱신 중이다. 롯폰기 어느 가게의 다쿠아즈가 맛있다느니, 산노미야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에서 파는 초코렛 무스가 최고라느니, 디즈니랜드에서 미키마우스를 만난 어린아이처럼 흥분하여 난리도 아니다. 먹고 있는 꿀빵도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이참에 허니 시나몬도 추가로 사 먹어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있다. 신칸센을 타고 교토로 돌아갈 적에 기차 안에서 (처)먹을 작정인가 보다.

『아닌데.』
여전히 실실 웃는 모습이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
여기서 가능한 줄거리는 둘.
① 오로보로당 꿀빵이 아니라 다른 걸 사서 기차 안에서 먹는다. 예를 들자면 JR 센다이역점 2층 개찰구 앞에서 파는 키쿠후쿠. 완두콩 크림 추천.
② 교토로 돌아가는 건 나중이다.
게토 스구루의 판단으로는 후자다.

『어제까지만 해도 대충 시늉만 내다가 적당히 눈치를 봐서 학교로 돌아간다고 하지 않았던가.』
『재밌는 걸 찾았는데 이대로 돌아가면 아깝지.』
『5급 주령화 된 부해가 사람에게 들러붙은 게 그렇게 신기했었어?』
『그쪽이 아니라 허리 구부리고 잔뜩 헛구역질한 쪽.』
『아, 흥미가 간 건 그쪽이었나.』

게토 스구루가 흐음, 이러고 숨을 길게 내쉬었다.
『느낌이 다소 이상하긴 했지만 그 정도면 정상 범주 아니야? 동네가 동네인 만큼 어느 정도 주력이 뒤틀린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일으켜 세워주면서 봤는데 손목에 구슬 팔찌 형태의 주물도 차고 있었어. 싸구려 부적 같은 게 아니고 주술사가 만든 진짜 물건이더라. 추측하자면 부해에 닿지 않으려고 만든 거겠지. 때로 부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조사하면 금방 나올 거야.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창에게 알아보라고 지시하면 되잖아, 고죠. 이게 네가 직접 나설 일이야? 여중생에게 양갱 취급받았다고 그새 억하심정이라도 생겼어?』
『슬퍼. 날 그렇게 속 좁은 남자로 보았던 거야? 스구루.』
『그 많은 꿀빵이 한꺼번에 다 들어가는 걸 보면 속이 작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 너는 느끼하지도 않냐.』
『하나도 안 느끼해. 맛있기만 하구먼.』
고죠가 별안간 웃음기를 걷어내고 표정을 달리했다.
『그리고 스구루, 창에게 조사를 미루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라고 봐.』

어디 한 번 계속해 보라며 게토 스구루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이유는?』
『비유하자면 이런 거야. 현대국가에서 살고 있는 나는 코카콜라 빈병을 보면 재활용 쓰레기, 이러고 주워서 쓰레기통에 넣겠지. 그런데 아프리카 사막지대에 사는 원시 부족민이 우연히 모래에 파묻혀있던 코카콜라 병을 봤다고 치자. 문명이라는 걸 접해본 적이 없는 그는 이게 유리병이라는 것도 모를 테고, 코카콜라라는 건 더더욱 몰라. 태어나 코카콜라를 마셔본 적이 없으니까. 입구에 대고 후후 숨을 불었다가 소리를 내는 악기라고 단단히 오해를 하고 집으로 가져가 보물로 삼겠지.』
『사막에 쓰레기 버린 놈, 죽어라.』
『아름다운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자! 분리수거 철저히!』
사이좋게 구호를 외친 뒤, 두 사람은 언제 그랬느냐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이해했어. 요컨대 코카콜라를 먼저 마셔봐야 한다는 거군.』
『대충 그런 셈이지.』
『그렇다면 네 녀석의 판단은? 육안(六眼)으로 봤을 거 아냐.』
『봤지.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창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거잖아. 걔, 인간 아닌 것이 미묘하게 섞였더라고. 아주 살짝.』
『뭐?』
『그렇게 정색하고 놀랄 일은 아니야, 스구루. 큰 접시에 날치 알 하나 정도로 섞였으니까 네가 눈치를 채지 못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고 봐.』
『날치 알이든, 가쓰오부시든, 인간 아닌 거라며. 그게 뭐였는데.』
『미안, 스구루. 나도 아직은 잘 몰라. 나 역시 코카콜라 빈병을 처음 보는 아프리카 부족민 심정이라니까.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면 좋을지, 집에 가져가 보물로 삼을지 판단이 서지 않아.』

저주와 동화한 인간은 주술 규정에 따라 사형을 집행한다. 예외는 없다.
그 저주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재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얼른 잡아다가 주술사로 키워야 한다. 가뜩이나 인력부족으로 허덕이는 주술계다.

『사형이라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구나, 너.』
『어라, 그러고 보니 스구루는 주술고전 입학식 날 야가 선생님 앞에서「주령은 얼마든지 잡아 족칠 수 있어요, 하지만 아직 인간은 죽이기 싫어요. 주령을 다루는 인간이라고 해도요.」라고 말 했었지?』
『야가 쌤에게만 말한 걸 네가 왜 알고 있는 건데.』
『음... 그건. 내가 1학년 반장이니까?.』
『주술고전 1학년생이 너랑 나, 이에이리 쇼코까지 딱 3명인데 누가 반장이야.』
『에잉, 반장이 하고 싶었으면 진작 말을 하지. 속상하면 부반장이라도 할래?』
『이야기의 논점이 빗나가고 있잖아, 고죠.』

게토 스구루가 진심으로 화를 내려고 했기 때문에 고죠 사토루는 약삭빠르게 화제를 바꿨다.
『있잖아~ 타락한 신을 조복하려면 스구루는 제일 괜찮은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야가 선생님이 나불나불 거렸냐고. 아님 엿들었어?』
쉽게 안 넘어오네. 한숨이 푹 나왔다.
『나는 육안(六眼안)의 소유자이지 육이(六耳)의 소유자가 아니야. 엿듣는 짓은 하지 않아.』
『호오... 그렇다면 야가 마사미치 그 양반이 나불거렸다는 거네.』
『교사로서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생과 사의 경계선을 항상 왔다 갔다 하고 있잖아. 상대방이 사람이라서 죽일 수 없다, 일찍이 단정지어버리면 목숨이 아홉 개라도 부족할 테지.』
팡, 소리가 나도록 게토 스구루의 어깨를 때렸다.
온전히 손목 힘으로만 때렸기 때문에 아플 일은 없겠지만 게토 스구루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진 채였다.

『각설하고, 다시 질문할게. 타락한 신을 조복하려면 스구루는 제일 괜찮은 방법이 뭐라고 생각해?』
『원자폭탄.』
『어이. 지금 화가 난 상태라는 건 알겠는데 대충 대답하진 말아주겠어?』
『대충 대답한 거 아니야, 고죠. 타락한 신이면 특급 오브 더 특급이잖아. 그걸 무슨 재주로 잡아. 네가 가진 무하한 술식이면 가능하겠지만 내 경우엔 비벼보지도 못 한다고. 1초도 되지 않아 머리가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갈 거다. 1초 컷이야.』
『그렇군. 무하한이 없으면 1초 컷인가...』
그가 턱을 어루만지며 잠시 뜸을 들였다.

『혹시 스구루는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한자성어의 뜻이 뭔지 알아?』
『오랑캐로 오랑캐를 잡는다는 의미잖아.』
『바로 그거야. 특급으로 특급을 잡는다는 의미지!』
고죠 사토루가 예고도 없이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짙은 색의 선글라스가 가로막고 있었지만 게토 스구루는 육안의 파란 눈동자가 직접 닿았다는 느낌에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렸다.

Posted by 미야

2021/03/15 16:51 2021/03/15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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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주술회전은 애니 초반부만 감상한 상황이라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자가발전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만화책이라도 사다 읽어야하나 고민 중인데 등장인물이 갈려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증발하는 수준이라고 들어 당혹스럽군요.


그들은 벌칙수행 중이었다.
정정한다. 고죠 사토루는 벌칙수행 중이었다.
동행한 게토 스구루는 상층부의 요청에 따라 일종의 도련님 감시자 역할로 따라붙었을 뿐으로 귀찮다는 내색을 감추지도 않은 채 설설거렸다.
『으아, 사방에 음식물 쓰레기가... 너도 와서 도와, 스구루.』
『싫거든.』
『친구 사이에 그러기냐. 너와 나의 우정은 그렇게 얄팍하지 않잖아.』
『얇아. 계란 부침보다 못한 두께지.』
육교 아래로 좋지 않은 것들이 썩은 표주박처럼 주렁주렁 맺혔어도 게토 스구루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주술고전에 입학에서 고죠 사토루와 통성명을 마친 게 얼마 전이다. 살갑게 친구타령을 하기엔 아직 빠른 거 아닌가, 그는 생각했다. 부러 거리를 둘 마음도 없지만 먼저 다가가 가깝게 지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게토 스구루는 제법 낯을 가리는 편이다. 그런 서툰 부분을 도련님은 오히려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였지만.
『평가가 너무 야박한 거 아냐? 스구루. 우리의 우정은 최소한 비프 스테이크 두께라고. 이~ 정도쯤?』
『역시 좋은 집에서 자란 도련님이네. 그만큼 두꺼운 고기도 썰고.』
손가락으로 이 정도 두께라고 어림짐작해 보이는 고죠 사토루를 향해 피식 웃어 보이는 게토였다.

예전부터 실수를 저지른 주술사에게 페널티를 부과할 필요가 생기면 뱀신 마을로 보내 제대로 골탕을 먹이는 게 관행이다.
파충류를 좋아하고 취미로 도마뱀을 기르는 부류라면 페널티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한 정신적 부담을 지게 된다. 사방에서 뱀이 솟구치는 – 여기에도 뱀, 저기에도 뱀 – 정작 퇴치해야 할 주령은 4급에서 5급 피라미들이라서 상대할 가치도 없는 것들이고, 대신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들은 반세기 전부터 부해(腐賌)하여 결국 거름이 되어버린, 과거 신으로 모셔지던 것의 잔해다.
『반성한다고, 젠장! 영혼을 다해 반성한다고~!!』
장소 불문하고 주룩 흘러내리는 검정의 찌꺼기, 그것도 뱀의 형상을 한 무더기의 부해가 지뢰밭처럼 널려있는 걸 보고 있자면 「내가 왜 그때 결계가 완성되는 걸 기다리지도 않고 주령의 모가지를 똑 따버렸을까. 1초만 참았더라면. 과거의 나, 반성해라!」극심한 후회에 빠질 수밖에 없다.
머리 위로 상한 토사물을 닮은 역겨운 것이 후드득 쏟아지는 느낌에 질색했다.
무하한이라는 술식이 있어 직접적으로 닿는 일은 결코 없지만, 아무튼 썩은 미역줄기를 뒤집어쓰는 건 충분히 기분 나빴다.

『확실히 기분 좋은 광경은 아니긴 한데...』
어깨에 묻은 부해를 고양이 털인양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내며 게토 스구루가 말했다.
『숫자가 어마어마해서 그렇지 크게 해롭지도 않은 종류래. 여기 뱀신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익숙해져서 이런 거에 닿는다고 앓는 법도 없다고 하더라. 야가 선생님도 삼나무 꽃가루 취급하면 된다고 하셨어.』
『뭐가 삼나무 꽃가루야! 삼나무 꽃가루는 주술사가 나서서 일부러 치우는 법 없잖아!』
『가짜로 우는 척하지 마, 고죠. 1급 주술사가 부해 정도로 죽는 소리나 하고 앉았고... 모자란 너님 인격수양에 큰 도움이 될 거라던 담임 쌤 말씀을 떠올려.』
『음식물 쓰레기 앞에서 인격수양이 뭔 말이야! 빌어먹을 야가 선생! 나를 썩은 뱀 마을로 보내놓고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을 거라 생각했겠다! 농담이 아니야. 이러다간 밧줄만 봐도 뱀이다 고함치게 생겼다고!』

토지신이 타락하면 특급의 주령이 된다.
그러면 주술사들이 나서 조복(調伏)을 한다.

『마무리가 엉성하면 나중에까지 이렇게 개지랄이 된다는 걸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육 현장이군.』
담장에서 전봇대까지 엄청난 량의 부해가 왁자지껄하게 엉켜 붙어 있다.
5년에서 6년 터울로 주기적으로 주술사가 방문하여 부해를 걷어내고 있음에도 여전히 이 정도의 양이라면 과거에는 어떠했을지 짐작조차 안 갔다.
『주술사들에게도 빨간 종이(징집영장)가 떨어졌던 시대에 벌어진 일이라고, 스구루. 젊은 실력자들은 전쟁터에서 구르고, 어쩔 수 없이 관짝 입성 하루 전날의 영감님들이 요통을 호소하며 어여차 했는데 상대가 특A급이다 보니 쉽지 않았던 모양이야. 요행으로 조복에 성공은 했는데 딱 거기까지였던 거지. 듣자하니 비술사 주술사 가리지 않고 사망자도 제법 나왔다고 하더라.』
『나는 비술사 집안 출신이라 그런 이야긴 몰라, 고죠.』
『주술사 집안이라고 다 아는 것도 아니야. 젠인 가문에서도 이곳 뱀신 마을 이야기에 대해 꿰고 있는 사람은 없을 걸? 기록 불가에 함구령까진 떨어진 사건이라고. 고죠라서 그나마 정보가 있던 거고... 뭐,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야. 잘난 척하는 영감님들이 바지춤도 못 내리고 똥을 지렸는데 얼마나 부끄러웠겠어.』
꿈틀거리는 부해를 손으로 잡아 쥐어 터뜨리던 고죠 사토루가 대놓고 이죽거렸다.
『줏대도 없고, 능력도 없고, 콧대만 높아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똥이나 싸는 것들.』
진짜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일이 없었다.

『저는 중학교 1학년이라고요! 제 키는 평균이고, 코가 땅바닥에 닿는 일은 없다고!』
정말이지 마음에 드는 일이라곤 요만큼도 없었다.
이쪽을 봐도 뱀, 저쪽을 봐도 뱀.
성가시게 코딱지까지 뱀을 달고 나타났다.
『그만해, 고죠! 여기서 주력 꺼내지 마. 비술사... 아니, 일반인이잖아. 게다가 중학생이고.』
저게 어딜 봐서 일반인이야. 고죠 사토루는 대놓고 투덜거렸다.

짜리몽땅이 발목에 감고 있는 뱀은 지금까지 보아온 부해와는 모습이 달랐다.
덜 썩었고, 훨씬 실재감이 강했다. 문드러진 곤약 젤리가 아니라 뱀 머리형태가 선명했다. 심지어 비늘도 달렸다. 눈이 좋은 고죠 사토루는 비늘에 난 소용돌이 문양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부해는 썩어 사라지는 게 아니었나?
이쪽에서 일부러 약간의 주력을 흘려보내자 반응을 보였다. 아주 약간이었지만 색이 검게 짙어졌다.
『한여름도 아닌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까 보이는 게 없지!』
정작 그 뱀을 달고 있는 코딱지는 일절 반응이 없다는 게 신기했다.

주력은 주술사와 비술사 모두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많고 적음이 다르고, 본인의 의지로 그걸 다룰 수 있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주령만이 아니라 보통의 사람도 주력에 반응한다.
실수로 가발 벗겨진 교장 선생님 앞에 선 기분 – 게토 스구루는 그런 비유를 쓰기도 했다. 그게 정확히 그게 무슨 기분인지 일반인 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는 고죠 사토루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식은땀이 나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선천적으로 둔감한 체질인가.」
저 중학생은 어디를 봐도 가발 벗겨진 교장 선생님 앞에 선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찬가지의 교복을 입은, 키가 더 큰 쪽은 그와 반대로 얼굴 표정이 대단했다.
기회를 보고 여차하면 달아날 태세지만 아직까지 걸음아 나 살려라 하지 않는 건 그가 흘려보낸 주력에 반응해 몸이 굳어서이고, 더하여 의리 없게 땅딸보를 버리고 갈 수 없다는 내적 갈등 탓인 듯했다.

재밌어하며 고죠는 흘려보내던 주력을 조금 더 늘렸다.
사람이 기절하지 않을 정도로 컨트롤하는 건 물론 잊지 않았다.
『히이익! 포, 포장해 드릴게요! 말씀하신 꿀빵 다 드리겠습니다! 딸기크림, 조림 사과, 바나나 화이트치즈, 맞죠? 금방 준비하겠습니닷!』꿀빵 가게 점원이 주력에 반응했다.
『와, 도련님 인성 보소.』게토 스구루가 뒷목을 잡았다.
『중생의 의미는 중간에 생기다 말았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다!』
여중생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뽐내며 같지도 않은 코를 세웠다.

오른발을 내밀어 팡 소리가 나도록 발을 굴렀다.
주력을 실은 간단한 동작에 발목을 감고 있던 뱀이 풍선처럼 부풀다 못해 갈기갈기 찢어졌다.

허겁지겁 꿀빵을 포장지에 담던 가게 종업원이 어, 소리를 내며 귀를 막았다.
그리고는 곧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어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왜 귀를 막았지? 것보다 방금 뭐였어? 어디서 가스통이 터졌나? 그런데 소리가 들리긴 했나?
반사적으로 텔레비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미야기현 지진특보가 흘러나올 거라 생각해서였다.
동시에 아랫배를 부여잡은 이이지마 하나에가 돼지 멱따는 웨엑 소리를 내며 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Posted by 미야

2021/03/13 19:46 2021/03/13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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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와 나란히 하교하는 미즈키를 향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이해한다. 하나에 선배는 미인이니까. 공주님과 선머슴의 조합은 아무래도 눈에 띈다.
소곤거리며 귓속말을 나누는 이들 중에는 반장 하시모토와 그녀의 단짝 이시즈미도 있었다.
막상 미즈키와 시선이 마주쳤을 적엔 고개를 홱 소리가 나도록 돌려버렸지만...
어쩐지 반장은 속이 불편한 표정이었다. 찡그린 모습이 콜라와 된장 콩볶음 반찬을 같이 먹었을 적과 비슷했다. 아마도 변비로 인한 배변감이 남아서 그런 모양이라고 미즈키는 짐작했다. 성장의 후폭풍을 맞은 다수의 여중생들이 여드름 이전에 변비라는 복병을 만나 고생을 하고 있다.

모쪼록 내일 아침 화장실에서 좋은 소식과 마주치기를.
상대방이 호응을 해주든 말든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선배와 발맞추어 교문을 나섰다.

너무 기뻐 전봇대를 껴안고 울고 싶어졌다.
하지만 술 취한 주정뱅이 회사원 흉내는 내고 싶지 않았기에 전봇대를 상대로 추태를 부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햄버거 가게 마스코트 인형을 껴안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음 진정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울렁증까지 왔다. 젊었던 시절 아버지가 어머니와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을 적에 멀미를 일으키고 토를 했다더니, 그 피는 어디로 가지 않았다.

『괜찮니? 스가와라. 안색이 창백한데.』
『스가와라라고 부르지 말고 미즈키라고 이름 불러주세요. 저도 하나에 선배라고 부를게요.』
그 와중에도 챙길 건 챙기고 보는 미즈키였다.

『무리를 시킨 건가 싶어 미안하네. 잡초 뽑는 거, 많이 힘들었어?』
『괜찮아요. 이래 뵈도 근육 많아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청소는 1시간 정도 걸렸다. 담배꽁초나 포장종이 이런 걸 줍지는 않았는데 잡초 파워가 생각보다 대단했다. 귀찮다고 내버려두면 쑥쑥 자라 나중에는 원예용 가위나 낫 같은 도구를 동원해 베어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단다. 날씨가 더워지고 비가 오기 시작하면 누가 일부러 배속시키기라도 한 양 잡초의 성장속도가 눈부시게 빨라져 여름에는 청소부가 아니라 원예부로 업태 변경되는 일도 있다고 했다.
휘발유를 뿌리고 불이라도 지르고 싶다는 유혹도 그래서 생긴다나.
『위험하잖아요.』
『당연히 위험하지. 산불로 번지면 학교 체육관까지 순식간이야.』
그나마 산이 그늘지고 서늘한 편이라 부원 숫자가 없어도 일이 돌아가는 거라고 하나에가 설명했다.

『그렇군요. 청소부에 부원이 더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역시 영화 감상부나 추리소설 클럽처럼 인기가 있을 수는 없겠죠.』
반장 하시모토 리코가 가입한 해리 포터 원서 독해부는 2003년에 출간된 불사조의 기사단을 읽기 시작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부원이 증가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제일 커다란 부실에서 모임을 가지고 있다. 지금은 쓰지 않는 낡은 음악실을 개조한 장소에 모두 모이면 무려 마흔 명까지 의자에 앉는다. 그렇게 한 자리에 모여 영어 원서를 소리 내어 읽으면 꼭 불경을 개굴개굴 외우는 모양새가 되었다.
개의치 않고 부원들은 팔까지 휘두르며 마법 스펠링을 합창했다.
익스펙토 페트로눔!

『으... 제발 학교에서 그런 짓 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마법 주문을 소리 내어 읽다니.』
이이지마 하나에가 50대의 아저씨처럼 허리를 구부리며 진절머리를 냈다.
『선배는 해리 포터 안 좋아하세요?』
눈치껏 짐작하자면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미즈키의 생각에 이이지마의 취향은 해리 포터가 아니라 다자이 오사무의「인간 실격」쪽이다. 책장에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장편소설「설국」도 꽂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을 귀 옆으로 쓸어 넘기며 히라가나 별도 표기 없이 세로방향으로 한문이 잔뜩 적힌 낡은 책을 집중해서 읽어 내려가지 않을까.
『...... 영화 정도는 봤어.』
『그럼 다음 시리즈가 나오면 같이 보러 가요. 올해 여름방학 시즌에 아즈카반의 죄수가 개봉될 거래요.』
어린애처럼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돌면서 미즈키가 약속을 졸라댔다.

이상하게 그러자, 말자,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미즈키는 겨울날 눈 맞은 강아지처럼 한 바퀴 더 빙글 돌았다.
『하나에 선배?』
『젠장. 있잖아, 후배님. 여기까지 와서 도중에 바꾸자고 말하는 건 좀 미안한데, 오늘의 메뉴를 꿀빵에서 카레라이스로 변경하면 안 될까? 갑자기 미친 듯이 카레가 먹고 싶어졌어. 응. 그래. 오늘은 카레다.』
무엇을 봤기에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뜬금없이 하나에가 카레 타령을 했다.

목적지인 오로보로당 가게 앞으로 가쿠란을 입은 남학생 두 명이 서있었다.
두 사람 다 운동하는 사람처럼 키가 굉장히 컸다. 몰라도 180cm는 넘을 터였다.
하지만 배구나 농구선수는 분명 아니다. 왜냐하면 한 명은 머리를 하얗게 탈색한데다 색이 짙은 선글라스를 썼고, 다른 한 명은 어깨에 닿는 길이로 머리카락을 길렀기 때문이다. 교복도 개인취향을 반영해 수선을 한 눈치다. 그러니까 학교 교칙과는 담 쌓고 사는, 질 나쁜 고등학생으로 보였다.

탈색남이 징징거렸다.
『나는 딸기크림 꿀빵이 먹고 싶다고오. 왜 팔지를 않겠다는 거야.』
『손님, 그게... 품절이라서. 팔지 않겠다는 게 아니고.』
진열대 앞에 서있던 아르바이트 점원이 애원하듯 목소리를 떨었다. 두 남학생의 덩치에 완전히 압도당했는지 평소 유창하던 접대멘트는 전부 까먹고 버벅이느라 바빴다. 대학교 3학년이 고등학생에게 쫄았다.
『저쪽 포장박스에 남아 있잖아. 하나, 둘, 셋, 넷, 여섯 개나 남았네.』
『그것은 비매품으로. 죄송하오나. 네. 여섯 개군요.』
오로보로당 주인은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젊어서 고생을 잔뜩 했던 기억 때문인지 부족한 학비를 벌기 위해 가게에 취업한 아르바이트 점원에게 가욋돈을 더 붙여준다는 식의 친절을 자주 베풀곤 했다.
상자에 담아 미리 빼둔 꿀빵 또한 오로보로당 사장이 주는 일종의 선물이다. 집에 돌아가 동생들과 같이 먹으라며 인기가 많아 금방 품절이 되는 종류로 골라 때때로 챙겨주곤 했다.
그러한 속사정을 미즈키가 상세히 꿰고 있는 까닭은 그녀 또한 비매품으로 빼둔 꿀빵에 눈독을 들이고 하나만 달라 졸라댄 적이 있어서다.

『고죠. 너는 비매품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거냐. 상품으로 팔지 않겠다는 뜻이잖아.』
장발남 쪽이 적당히 하라며 한 소리 했다.
『그럼 더 잘됐네. 돈 내고 사지 말고 서비스로 받아가면 되겠다. 그지?』
멋대로였다. 탈색남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우기고 보았다.
『에, 그러니까 저쪽 비매품 딸기크림은 서비스로 전부 주시고. 설탕조림 사과 맛이랑 바나나 화이트치즈 포장해주세요. 열두 개 세트요.』

미즈키가 하나에의 귀에 대고 살짝 귓속말했다.
「못 보던 교복인데 아마 양아치인가 봐요.」

귀가 밝았다. 탈색남이 아앙? 날티 가득한 소리를 내고 이쪽을 쳐다봤다.
『방금 뭐라고.』
『뭐긴요. 꿀빵이 참 맛있다고요.』
『양아치라고 하지 않았어?』
『양갱이라고 했는데요.』
목숨은 하나다. 미즈키는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거짓말했다.
『그쪽이 귀가 안 좋은 거예요. 비매품이라는 말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잖아요.』
『지금 싸우자는 거냐.』
『아뇨. 훈수 두는 건데요. 설탕조림 사과보다 허니 시나몬을 사가요. 그게 더 맛있어요.』

언짢았던 모양이다. 상대방의 기운이 매서워졌다.
『기분 더러워. 도쿄에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짜증나는데 양갱이니 양아치니...』
『그만해, 고죠! 여기서 주력 꺼내지 마. 비술사... 아니, 일반인이잖아. 게다가 중학생이고.』
『저게 어딜 봐서 중학생이야. 똑바로 보라고, 스구루. 초등학생이잖아!』
『교복 입었어.』
『땅에 코가 닿고 있잖아! 불쾌한 초등학생이야!』
미즈키는 참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이라고요! 제 키는 평균이고요. 한여름도 아닌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으니까 보이는 게 없지!』
『너무 잘 보여서 쓰고 있는 거야, 이 어리석은 중생아.』
『중생의 뜻은 알아? 비매품의 뜻도 몰랐으면서.』
『중간에 생기다 말았다는 거잖아, 꼬마야. 아무렴 이 위대하신 고죠 사토루님이 그것도 모를까보냐.』
허리에 손을 댄 사내가 고개를 빳빳하게 들어 가뜩이나 커다란 자신의 신장을 더욱 크게 보이게 만들었다.
미즈키도 이에 질세라 뒤꿈치를 들어 올렸는데 슬프게도 그래봤자 남자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Posted by 미야

2021/03/11 15:42 2021/03/11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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