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와서 붙인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오작동으로 의심했던 화재경종이 영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자 3학년 3반 수업을 진행하던 지리과목 담당교사는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원시용 안경을 벗었다.
옆 반에서는 이미 수업을 중단하고 대피에 들어갔다.
연기가 보이는 것도 아니고 타는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니 두말할 것도 없이 오작동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설이 낡아가고 고장이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겠다만, 예산부족을 탓하며 제대로 손보는 일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어 이런 식으로 수업에 지장이 생기는 일이 간혹 벌어지고 있다. 
그래도 만의 하나라는 것이 있고, 과거 이 학교 미술실이 영문 모를 화재로 피해를 입은 적도 있으니 훈련이라 생각하고 슬슬 움직여야 할 것이다.
벗은 안경을 셔츠 주머니 안으로 밀어 넣은 교사는 손바닥으로 교탁을 탕탕 때렸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수업을 쨀 수 있게 되었다며 몇 눈치 없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기뻐했는데 진도를 나가지 못한 부분은 숙제의 형태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갈 터이니 좋아하기엔 아직 일렀다.
『그만 떠들고 일어나 일렬로 운동장으로 이동하도록. 숨어서 자겠다는 놈 있으면 깨워서 데리고 나가라.』
상급반일수록 층수가 낮아 3학년 교실은 1층과 2층에 집중되어 있다.
현관 출입구까지 도달하는데 시간은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3학년 3반 전원이 중앙 출입구 앞에 다다랐을 적에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인원이 자기들끼리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격렬하게 의사소통을 벌이는 중이었다. 다들 흥분한 상태여서 대화가 아니라 싸움 수준이었다. 더하여 세 명이 동쪽에서 달려 나왔다. 지갑을 두고 나와 교실로 돌아갔다 온 것도 아니다. 시원한 표정이 아닌 것으로 보아 화장실에 다녀온 건 더더욱 아니었다.

학생들을 양몰이 하며 뒤에서 따라오던 교사가 역정을 내며 다가갔다.
그가 화를 내는 이유는 단순했다. 신발 때문이었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학생들 다수가 실내화를 벗고 실외화로 갈아 신은 뒤였다. 교칙위반이었다.
『야! 너희들. 운동화를 신고 누가 마음대로 복도를 뛰어다니랬-』
『창문으로 나가보자. 가서 걸상을 가지고 와.』
『아니, 멀쩡한 출입구를 놔두고 왜 창문으로 나가려는 거냐고. 너네, 제대로 설명 안 할 거야?!』
『나중에요.』
아이들은 교사의 호통을 대놓고 무시했다.

의자를 밟고 창문을 넘어보자 제안하는 학생은 3학년 5반이었다.
그 옆에서 손톱 거스러미를 잡아 뜯고 있는 여학생은 명찰을 보니 3학년 1반이었다.
『절대 인정 못해! 인정 못 한다고! 나도 콧쿠리님을 모셨단 말이야!』
『거짓말. 언제는 미신이라며 비웃었잖아.』
『기합 넣기 체조가 싫어서 거짓말했어. 그게 내 잘못이야?』
그렇게 외치던 여학생은 벌겋게 달아오른 눈언저리를 손등으로 마구 문질렀다. 몰래 바른 화장품이 엉망으로 번졌어도 당사자조차 거기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걸상이 준비되자 멋대로 순번을 자처한 여학생이 앉는 부분을 밟고 올라갔다.
운동신경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신중한 성격이었는지 다소 굼뜬 동작으로 다리 하나를 창틀에 올렸다. 그런데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가로막혀 뛰어 넘는다는 다음 행동으로의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더듬거리자 막이 느껴졌고, 주먹으로 치니 출렁거렸다.
뭐라 형용하기 어려운 외마디 소리를 지른 그녀는 몸을 던진다는 요령으로 어떻게든 나가고자 했다.
그래봤자 눌린 뺨이 우스꽝스럽게 찌그러질 뿐이었다.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왜 이러는 건데.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래!』
의자에 올라선 상태로 그녀가 악을 써댔다.
『뭘 잘못했는지 모르지만 사과할게. 사과한다고! 그러니까!! 당장 그만둬!』

지금도 계속해서 운동장으로의 대피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이다.
대다수는 아무렇지도 않게 출입구를 잘 빠져나왔다.
그렇다면 밖으로 나오는 게 아예 불가능한 몇몇의 학생들은 뭐냔 말이다.

운동장 밖으로 이미 대피를 완료한 학생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쪽을 쳐다봤다.
본능적으로 창가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의자 위에서 발을 구르고 있는 애를 강제로 끌어내렸다.
얼굴색을 바꾸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하하 웃었다. 경련하듯 입술이 떨렸지만 웃었다.
인정하면 진짜가 되어버린다. 저주라는 건 그런 것이다.  
『출구가 여기만 있는 건 아니니까 다른 곳으로 가보자.』
『어, 그래... 그게 좋겠다. 그럼 우린 구름다리 쪽으로 가볼게.』
그러면서 그들 중 몇은 1학년의 콧쿠리님과 2학년의 콧쿠리님이 몇 반이었는지를 곰곰이 떠올렸다.
그게 지푸라기이든, 썩은 동아줄이든, 잡아야 했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신발을 양손에 쥐고 양말 차림새로 복도를 살금살금 걸었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면 이게 최고다. 수업을 몰래 빼먹던 실력은 어디로 가지 않아 계단을 올라오던 상급생이 알아채지 못하고 4층으로 향했다. 납작 몸을 숙였던 이이지마는 속눈꺼풀을 열고 스쳐지나간 3학년을 관찰했다.
머리부터 발목까지는 외관이 멀쩡했지만 발목 아래부터는 형태가 일그러져 잘 보이지 않았다. 부해 찌꺼기를 잔뜩 밟은 탓인지 옮겨 붙었다. 따라가는 일행도 옆구리부터 목덜미까지 먼지에 뜯어 먹힌 형상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대화를 나눴는데 「옥상, SOS 글자, 헬기가 오면, 영화처럼」단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골탕 좀 먹겠군, 생각하며 목을 길게 빼고 아래층의 냄새를 맡았다. 상급생 두 명은 재작년 자살소동으로 옥상 출입문을 봉쇄했다는 걸 까먹은 눈치다.
『연기 냄새는 안 나요.』
마찬가지로 코를 킁킁거리던 스가와라 미즈키가 그렇게 말했다. 진짜로 화재가 발생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중이라고 여기고 있기라도 한 건지 집중해서 화재의 징후를 찾고 있었다.
설명이 귀찮았던 탓에 오해를 바로잡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자며 신호했다.

1학년 2반 아이들 중 다수가 부해에 접촉했다.
그중에서 단연코 사정이 월등하게 나빴던 건 머리부터 무릎까지 부해를 왈칵 뒤집어쓴 스가와라 미즈키다.
깨끗하게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가 아니었다면 하수구에서 건져 올린 미역다발이라고 오해할 법한 수준으로 더러움이 옮겨 붙었다.
손을 뻗어 검게 얼룩진 미즈키의 뺨을 문질러봤다. 그런들 기름얼룩 같은 종류가 아니니 지워질 리 없었다.
얼굴도 그렇거니와 문제는 입안부터 목구멍까지 새카맣게 변했다는 거다. 아, 하고 입을 벌리면 검댕이 잔뜩 묻은 굴뚝처럼 보였다.

당연히 좋지 않다. 게토 스구루의 말에 의하자면 미술 선생님 다나베 고우지의 몸 안으로 뱀의 모습을 취한 것이 들어가 있었다고 했다. 어쩌면 스가와라 미즈키도 조만간 뱀을 토할지도 모른다. 뱀만 토하면 차라리 다행이고... 몸을 떨면서 우우, 우우우 이러고 이상한 목소리를 내는 건 아닐지 걱정이었다.
이이지마 하나에가 가진 얄팍한 지식으로는 이걸 어떻게 해야 원래대로 되돌릴 수 있을지 짐작이 안 갔다.
조언을 듣기 위해 급히 할아버지 이이지마 리쓰에게 전화를 시도했더니 전파수신 상태를 보여주는 그림의 막대가 아예 사라져 있었다. 무려 통화권을 이탈했단다.
유선전화가 필요했다.

바지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허리를 구부정히 숙인 모습으로 5층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내려오던 고죠 사토루는 무진장 저기압이었다.
그리고 그의 불편한 심기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투로 1층에 자리하고 있던 미술 교사 다나베 고우지와 맞닥뜨리고부터는 절정을 이루었다. 그것은 대피하는 아이들을 돕는 척하며 출입구를 한 가운데 자리를 떠억 잡고 있었다.

빙의했다고 해도 안에 든 내용물이 영 별로인데 확 찌그러뜨릴까.
고죠 사토루가 막 불순한 생각을 품었을 때 다나베 고우지가 대피 중이던 학생 한 명을 끌어당겨 방패처럼 세웠다.
딱 봐도 협박이었다. 네가 뭔 짓을 하면 나도 뭔 짓을 해버리겠다, 말을 하지 않았어도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는 확고했다.
보고 있던 고죠 사토루의 한쪽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부해 찌꺼기 주제에 협박까지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당장 찌그러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손가락 관절을 우둑 소리가 나도록 꺾으며 계단을 하나 더 내려왔다.
앞으로 다섯 계단만 더 내려가면 반으로 접어버릴 작정이었다.

『하지 마! 애들이 다쳐.』
다급하게 만류하는 목소리는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 3층에서 게토 스구루가 머리만 내밀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걸 멈춘 고죠 사토루가 친구의 목소리가 들린 위쪽을 삐딱하게 쳐다봤다.
『싫은데.』 
말은 그렇게 했으나 두 손을 바지주머니에 넣는 걸로 마음 먹었던 걸 철회했다.
반으로 접어버리려고 했던 것이 다나베 고우지가 아니라 학교 건물이었으니 아직 대피하지 못한 아이들 입장에서는 목숨을 건진 셈이었다.

Posted by 미야

2021/03/31 16:51 2021/03/3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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