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술회전과 백귀야행의 설정을 대충 가져왔고 등장인물 또한 오리지널 캐릭터가 거의 전부입니다. 주술회전은 애니 초반부만 감상한 상황이라 원작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합니다. 이 글의 배경은 2004년으로 고죠 사토루와 게토 스구르는 주술고전 1학년입니다. 주인공 이이지마 하나에는 중학교 2학년, 스가와라 미즈키 및 하시모토 리코는 1학년입니다. 손가락 대마왕님 료멘 스쿠나는 간접적으로 등장할 예정입니다.


혼란된 혼돈속의 혼미한 정신.

2학년인 이이지마 하나에가 1학년 교실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반장이 이성을 잃고 괴성을 질러댔다.
상의 탈의 중 신체 건장한 남학생들에게 둘러싸이기라도 한 것처럼 비명을 질러댄 터라 옆 반에서 그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이냐며 웅성거렸을 정도다.
『왜 이라 캅니까, 선배! 이러는 거 아닙니다!』
평소의 고급 외제승용차 이미지를 순식간에 말아먹은 것으로도 모자라 삑사리가 났다.
분명 표준어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빠른 걸음으로 교실 안으로 난입한 이이지마 하나에가 손가락을 쭉 뻗어 반장의 코로 딱밤을 먹였다.
힘이 하나도 안 들어간 딱밤이었음에도 상대방은 무릎의 힘이 풀렸는지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다리를 오므릴 힘도 없어 벌려진 스커트 사이로 속옷이 훤히 드러났는데 창피함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깊은 산속에서 동면에서 깨어난 곰과 마주쳤다. 숲이 침묵했다. 새의 지저귀는 소리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도 전부 사라졌다. 하시모토는 시야가 어두워지고 있다고 착각했다. 여전히 하늘 위로 빛이 있음에도 맹렬하게 땅을 잠식하고 들어오는 저 공포스러운 것의 정체는 어스름이다.

이이지마가 팔짱을 낀 자세로 딱 한 마디만 했다.
『팬티 보인다.』
『히익!』
할 말은 제법 있었다. 솔직히 화도 좀 난 상태였다.
하지 말라고 하면 오히려 더 하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라지만 콧쿠리님 모시기는 끝이라고 그렇게 강조를 했으면 들어먹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귓등으로 들은 척도 안 하고 멋대로 1학년의 콧쿠리님을 모셔?!
앙화는 이제 없노라 (※ 殃禍 지은 죄의 앙갚음으로 받는 온갖 재앙)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해?
전교 10등 안에 든다는 잘난 머리라면서 그 말을 이해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츳, 하고 혀를 찼다.
그렇다고 1학년 후배를 겁먹게 만들어 가랑이를 벌린 채 교실 바닥을 기게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어서 곧 표정을 풀고 기운을 갈무리했다.
게다가 피가 나도록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반장이 이번 일의 주동자인 것도 아니다.
엄연히 따지자면 1학년 2반 전원이 피해자여서 이런 식으로 성을 내봤자 엄한 곳에 화풀이가 될 뿐이었다.

「하아. 어쩐지 기운이 쭉 빠지네.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정작 이번 일의 가장 큰 피해자는 물에 술탄 듯, 술에 물탄 듯이 굴고 있고... 나 혼자서 열 내고 있는 기분이잖아.」
얼쯤하여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로 쓸어 넘겼다.

어쩐지 이번 1학년의 콧쿠리님은 매우 둔한 성격인 것 같았다.
반 아이들의 따돌림으로 친구를 사귀지 못한 1학년의 콧쿠리님이 야외용 벤치에 홀로 앉아있는 모습은 제법 여러 번 목격되었다. 보는 사람 입장에선 측은하기 짝이 없건만 당사자인 미즈키는 어째서인지 따끈해진 봄볕을 기분 좋게 즐기는 모습이었다.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따분하고 졸린 표정으로 입맛을 쩝쩝 다셨다.
심지어 발목으로 영 좋지 않은 걸 주렁주렁 매달고도 그늘이 없었다.
체육복을 입고 비뚤 걸음으로 걸으며 천연덕스럽게 농땡이를 피우고 있던 미즈키를 보고 그래서 놀랐다.
아, 뭐라더라... 이런 걸. 마이 웨이라고 하던가.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어버릴 거라고, 귀신으로 변해 보란 듯이 저주를 내릴 거라 맹세하던 3학년의 콧쿠리님과는 양상이 180도 달랐다.

「발목의 붕대는 어쩌다 그런 거야?」
자판기에서 잘못 나온 우롱차를 핑계로 말을 걸어보았더니 발랄하게 대답했다.
「덜렁거리다 계단에서 굴렀어요. 뛰거나 하면 아직 욱신거리고 아프지만 거의 다 나았어요!」
뱀 한 마리가 송곳니를 박은 채 발목을 칭칭 감고 있는데 금방 낫겠니.
「괜찮아요. 이따~만한 바늘로 주사도 맞았거든요.」
아픈 발목을 앞뒤로 까딱거리며 미즈키가 말했다. 그때마다 피부에 이를 박고 있는 뱀도 마찬가지로 까딱까딱 흔들렸다. 두 눈이 퇴화하고 없는 눈 먼 뱀이었다.

지금도 그 뱀은 스가와라 미즈키의 발목을 물고 늘어져 땅바닥에 꼬리 일부가 닿아 질질 끌리는 중이었다.
불쾌하게도 땅에 끌린 흔적이 꼭 음식물 쓰레기 국물이 흐른 자국을 연상시켰다. 악취가 날 것 같아 코를 쥐어 막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칠 지경이었다.
「얘는 진짜지 어쩌다가 이런 음식물 쓰레기를 달 게 된 거람.」
눈이 퇴화한 뱀이니 분명 통할 거라 여기며 재빨리 발로 지려 밟으려 했다.
얄밉게도 그것의 반응이 빨랐다. 이이지마 하나에가 발로 밟으려는 것과 동시에 삿 하고 뱀이 꼬리를 위로 올려 피했다. 기분 탓일까, 눈이 퇴화해서 없는 주제에 뱀이 이쪽을 노려보며 눈싸움을 거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더욱 힘주어 미즈키의 발목을 칭칭 감았다.

『에고... 곤란하게 됐네.』
『아니오! 전혀! 전혀! 보기에만 그렇지 걷는데 크게 지장 없어요.』

스가와라 미즈키는 맹세코 사실이라며 붕대를 감은 다리를 척 들어보였다. 전혀 안 아픈 건 아니지만 빠르게 걷거나 뛰는 것만 아니라면 괜찮았다. 의사도 뼈에 금이 간 건 다 나았다고 장담을 했고, 일주일 정도 뒤에 붕대를 풀기로 되어 있었다.
언덕길을 올라가는 속도가 느린 건 다리가 아파서가 아니고 숨이 차서다. 생각보다 길이 가팔랐다.
『학교 뒤쪽으로 이런 길이 있는지 몰랐어요, 선배.』

클린업 클럽, 일명 청소 부는 카제야마 중학교에 존재하는 다수의 유령 부와 마찬가지로 부원도 딱히 없고 부실도 없었다. 감독하는 선생님도 부재다.
그런데 부 활동은 엄연히 있댄다. 그것도 무려 1945년부터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학교가 생기기도 전이다. 부활동이 아니라 당시에는 동네 행사처럼 행해졌던 듯하다.
손가락을 접었다 펼쳤다 반복하며 년 수를 헤아리던 미즈키는 진심으로 놀랐다. 자그마치 59년 전에도 양동이와 빗자루, 걸레와 같은 청소도구를 들고 이 길을 걸어간 학생들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때 미즈키의 부모님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다.

체육관 뒤쪽으로 나무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철문이 있고, 녹슬어 뻑뻑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뒷산으로 이어졌다. 그곳이 카제야마 중학교 부지의 연장선인지, 아니면 개인 사유지인지 알 수 없었다. 담장도 안 보였고 안내 표지판 같은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빗자루를 꼭 쥐고 가면서 미즈키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흡연금지, 버섯채취 금지, 대충 이런 문구를 적은 표지판 대신 돌을 쌓아 만든 탑들이 눈에 들어왔다. 크기는 크기 않아 한 자에서 두 자 정도였고 특이하게도 돌의 색이 검었다.
점판암? 글쎄다. 수업시간에 봤던 암석 샘플을 떠올려 봐도 종류를 짐작하기는 힘들었다. 돌은 표면이 거칠었고 색이 일정했다. 표면에 칠을 해서 인위적으로 색을 입힌 것일 수도.

『만지지는 말고.』
『네.』
방금 전 뱀 소굴에 손을 대려 했다는 것도 모르고 스가와라 미즈키가 밝게 대답했다.

「으, 진짜지 뱀 투성이! 온 동네가 뱀!」
지금도 스윽 소리를 내며 뱀이 땅바닥을 기어갔다. 탁하고, 물기가 있고, 꿈틀거린다.
처음에는 진짜 뱀이라고 착각해서 미친 듯이 발을 굴렀더랬다. 만약 그게 진짜였다면 자기 몸을 방어하려던 뱀으로부터 엄청나게 물렸을 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실체가 없는 종류여서 「버려진 사탕 봉지를 먹바퀴로 착각한 이이지마 하나에가 킹콩처럼 발을 굴렀다」로 마무리가 되었다.
먹바퀴는 옥외 서식 습성이 있고 주택 부근의 숲이나 옥상 텃밭에서 잘 발견되는 종류다. 마침 창궐하는 뱀에 패닉을 일으켰던 장소가 수풀이 우거진 곳이어서 다행히 먹바퀴 핑계는 잘 먹혀 들어갔다.

『이 돌탑들은 누가 쌓은 걸까요?』
꿈틀거리는 뱀들이 먼지처럼 쌓인 수풀 앞에서, 발목에 눈먼 뱀을 매달고 있던 미즈키가 호기심을 드러내며 두 눈을 반짝거렸다.
『하나같이 다들 올망졸망해서 귀여운 느낌이에요!』
『......』
『에엣? 선배는 아니에요?』

걸레를 담은 양동이를 휘둘러 망할 뱀 구덩이 돌탑들을 전부 쓸어버리고 싶은 걸 시몬, 너는 아느냐.
해탈한 그녀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후배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Posted by 미야

2021/03/09 13:48 2021/03/09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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