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이지마 하나에

이이지마 가문은 과거로부터 그것들을 보는 눈을 가져왔다.
하지만 어디다 얘기할 만한 수준인 건 아니어서 이(異)를 볼 수 있는 눈은 일곱 살을 기준으로 거의 전부가 힘을 잃었다.
이후로는 영감이 있는 편이다, 라는 말을 듣는 정도일 뿐이어서 사실상 보통의 평범한 사람으로 쭉 살아갔다.

이이지마 하나에가 알기로 정수리에 흰머리가 나고 나서도 보는 눈을 가진 집안사람은 민속학자이자 괴담소설 작가로 알려진 먼 친척뻘 할아버지밖에 없었다.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고 집에서 은둔하는 형이라 가족 간 내외하는 일은 거의 없었지만 마찬가지로 민속학을 전공했던 어머니 카나코가「할아버지가 쓰신 책이란다」 라며 어려워 보이는 두꺼운 책을 보내준 적이 있다.
카나코의 말로는 어린애가 보아서는 안 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적혀져 있다고 했다.
그래봤자 아직 한자를 읽을 수 없었던 하나에는 선반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책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본 상고시대 히다 지방 전설과 양면 아수라보단 아무래도 백설공주나 인어공주에 더 끌릴 수밖에 없었다. 일곱 살은 오늘 어떤 머리핀을 꽂을지를 고민하면 되었다.

「평범한 게 가장 좋은 거란다, 하나에.」

신문에 실린「오늘의 운세」를 보고 복권 구입을 결정하는 아버지처럼 될 거다.
놀이터 한 구석에서 느껴지는 뭔지 모를 으슥한 기운에 지레 겁을 집어먹던 어린 시절을 보내고, 소금을 지갑에 넣고 다니는 어른으로 성장해서는, 싼 값에 얻은 맨션 다다미방에서 바퀴벌레가 빠르게 기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며 질겁하는 어머니처럼 될 거다.
누군가는 그런 미래를 질색하겠지만.
하나에는 동경했다.

『하지만 하나에는 아직도 보이는 거지?』
『아니오.』
거짓말을 습관적으로 자주 하면 몸 안에 부(腐)가 쌓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 할 때가 있다.

하늘거리는 푸른 수염을 팔랑거리며, 용이라고 불러도 됨직한 커다란 무언가가 등 뒤로 가까이 다가왔다. 다가온 정도가 아니고 철썩 소리가 나도록 배치기를 시도해왔다.
하나에는 무릎 위에 내려놓은 주먹에 힘을 꾹 쥐고 멋대로 시시덕거리는 그것을 쳐다보지 않으려 기를 썼다.
그러니까 – 에, 그것은.
먼 친척 할아버지가 부리는 사역마로 이름은 아오아라시라고 했다.

《안 보여? 진짜 내가 안 보여? 이 꼬맹이 방금 눈가가 떨렸는데? 보이는 거지? 그지?》
세 번째로 그것이 몸통박치기를 시도하더니 코앞에서 고양이처럼 몸을 까뒤집었다.
사실 하나에가 보기엔 고양이의 몸짓이라기보다는 큰 구렁이의 꿈틀거림에 더 가까웠다.
사역마 아오아오아라시의 외형은 포유동물이 아닌 대형 파충류에 더 가까웠고 그래서 보는 이의 입장에선 살이 떨렸다.

이겨먹지 못하는 존재를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법이다.
식신 아오아라시가 부러 비늘을 털고 아가리를 벌려 흉악하기 짝이 없는 이빨들을 으스대자 또래보다 체구가 현저히 작은 여자아이는 시선을 얼른 바닥으로 내리깔았다.

『올해 열 살이라고 했지?』
『네.』
『그런데 여전히 속눈꺼풀이 열려 있구나.』
『아닌데요.』

자신의 몸을 지킬 힘은 하나 없고, 눈만 좋은 소녀는 자신의 능력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진작부터 알았다. 그래서 안 보이는 척했다.
아오아라시가 대놓고 입김을 푸푸 불자 참지 못하고 눈을 깜빡거렸지만.
여하튼 끝까지 모르쇠로 갔다.

《고집은 있네. 미숙한 계집.》
『그만해, 아오아라시.』
《꼭 어릴 적 너를 보는 기분이구나, 리쓰. 약하고, 무능력하고, 금방 잡아먹히게 생겼어.》
『그만하라고 했지.』
《조만간 잡아먹힐 거, 걍 내가 먹어도 될까?》
『될 거 같냐!』
어린애의 뒤통수를 갈작갈작 씹어대던 푸른 용은 그만하라는 주인의 명령에도 하나에의 머리카락에 열심히 침을 발라놓을 뿐이었다.

아, 사실 리쓰는 이 사역마의 진짜 주인이 아니다.
아오아라시는 어중간한 영력을 가져 명을 재촉하게 생긴 손자를 근심한 이이지마 가규가 남긴 요괴다. 따라서 리쓰의 명령은 듣지 않는다. 진짜 주인이었던 가규의 명령에 따라 이이지마 리쓰가 비명횡사하지 않도록 지키고 있을 뿐.
따라서 하나에를 괴롭히지 말라는 리쓰의 명령에 콧방귀를 뀌고 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잔칫상 차렸다며 침을 흘리면 흘렸지 애를 가만 놔둘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 보였다.

요괴가 흘린 침으로 범벅이라... 리쓰는 미안해 죽을 지경이었다.
『미안하다. 하나에.』
『아니에요.』
아이는 침울한 표정으로 축축해진 머리카락을 잘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무겁게 발을 끌며 천장과 바닥, 사방 벽에 전문 주술가가 제작한 부적이 붙여진 방으로 돌아갔다.

하나에와 이이지마 리쓰와의 관계를 따지자면...
속으로 셈을 하며 손가락을 여러 번 접던 리쓰를 향해 아오아라시가 깐죽거렸다.
《타인이지. 고조할머니끼리 자매이면 남이나 마찬가지야.》
아오아라시가 굳이 이죽거리지 않아도 같은 혈육이라는 느낌은 옅었다.
실제로 하나에의 가족과 인사를 나눠본 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었고, 그것도 목탁 소리 낭랑한 장례식장에서 각자 어색함을 두른 채 고개를 꾸벅거린 게 전부다.
게다가 부부는 좋지 않은 소문으로 한창 곤욕을 치루는 중이어서 체면치레만 하곤 달아나듯 식장을 떠나버렸다.

- 아이를 학대해서
- 몰래 죽여서
- 그게 아니라 먼 장소에 유기해서
- 센다이에서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걸 경찰이 발견해서
- 요즘 같은 시대에 신은(神恩)이 뭐래


그랬다. 이이지마 하나에는 일곱 살 되던 해 어느 일요일 오후, 벽장 속에 들어가 그대로 사라져 행방불명되었다가 6개월 만에 센다이의 어느 숲속에서 발견된 아이다.


2) 신은, 그해 봄

이이지마 부부가 아이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건 저녁을 먹을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하나에, 어딨니. 자니?』
딸의 방을 열어보니 텅 비어있었다.
『얘가 말도 안 하고 나가서 친구랑 놀고 있나,』
신발은 현관에 가지런히 놓인 채였다.

겁에 질려 상황을 설명하는 카나코 앞에서 결코 내색하진 않았어도 경찰은 처음부터 거짓신고를 의심했다.
출판사에서 프리랜서로 근무하던 어머니는 모처럼 쉬는 날을 맞아 밀린 집안일을 처리하느라 바빴다. 주방이며 거실이며 정신없이 돌아다녔다는 얘기다.
아버지는 노부히코는 컴퓨터로 바둑을 두고 있었다.
컴퓨터는 초등학생이 있는 보통의 가정집처럼 안방이 아닌 밖으로 나와 있었는데 아무리 게임에 초 집중을 하고 있었다한들 유괴를 목적으로 침입한 괴한이 거실에 있던 아버지 모르게 딸의 방으로 간다는 줄거리엔 무리가 있었다.

『어느 멍청이가 현관으로 애를 납치하러 들어옵니까! 창문으로 들어왔겠죠!』
경찰도 아주 바보는 아니라서 설치된 방범창의 파손 여부부터 확인했다.
『낡기는 했는데 어디 부러진 곳도 없고 밖에서나 안에서나 손을 봤다는 흔적이 없었습니다.』
걸쇠는 튼튼했다. 창살을 앞뒤로 잡고 흔들었을 적에 틀에서 빠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살펴본 욕실 환기창은 너무 작아 동물이 아닌 이상 통과가 불가능했다.

『일단 주변 CCTV부터 확인을 해보죠.』
그렇게 말하던 경찰은 잠시 동작을 멈추더니 책상에 펼쳐져 있던 아이의 그림일기로 손을 가져갔다.
19XX년 X월 X일. 날씨 흐림.
하나에로 보이는 여자아이. 그리고 까맣고 벌겋고 시퍼런 뭔가가 잔뜩 그려져 있었다.

『이건 뭘 그린 걸까요? 어머님.』
『강아지나 고양이겠죠.』
지금 그게 문제냐며 카나코가 방어적으로 팔짱을 낀 자세로 대답했다.
사실 그것은 개나 고양이라고 주장하기엔 모습이 이상했고 만화 원령공주에 등장하는 괴물을 연상시켰다. 새카만 크레파스로 덧칠된 덩어리는 팔과 다리가 네 개씩 달렸다. 자세히 보니 눈도 네 개다.
물론 진짜로 고양이를 그린 게 맞고, 단순히 아이의 그림 실력이 형편없어서일 수도 있다. 때로 어떤 아이들은 동물원에서 본 사자를 해바라기처럼 그려놓기도 하니까.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부모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란 아이는 일요일 오후 부모들이 집안에 머무르는 와중 감쪽같이 사라지지 않으며, 귀여운 고양이를 무슨 저주를 품은 멧돼지처럼 묘사하지 않는다는 거였다.

『몸값을 요구하는 연락이 없습니다.』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던 하나에의 행방불명은 수요일이 되자 부모에 의한 아동 살해 의혹으로 크게 부풀었다.

『이이지마 노부히코씨. 그날 오후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가 알고 싶은 걸 저에게 물어보심 어떻게 합니까.』
엄지의 굳은살을 신경질적으로 뜯어내던 노부히코가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도 몰라요. 모른다고요! 마지막으로 봤던 건 하나에가 숨바꼭질을 한답시고 겨울 이불을 넣어두는 벽장 안으로 들어갔다는 겁니다!』

문제의 벽장에서 그들은 손바닥 크기의 비단방석, 정교하게 세공된 인형 밥상을 찾아냈다.
마트에서 파는 소꿉장난용 그릇과는 품격이 달라 꽤 비싸 보이는 것들이었다.
특히 장인의 솜씨로 노송나무를 깎아 만든 둥근 밥상은 대형 백화점에서 부를 과시하며 히나 마쯔리 인형을 장식할 적에 쓰는 종류로 보였다. 마구 가지고 놀 종류가 결코 아니었다.
달력을 쳐다보자 마침 그 날은 히나 마쯔리가 하루 지난 3월 4일이었다.

《자, 자. 그래서? 벽장 안에서 방석동자와 소꿉장난이라도 하고 있었어?》
좌식 테이블에 앉아 공부를 하던 하나에는 같이 놀아달라며 쉬지 않고 말을 걸어오는 사역마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런 태도가 아오아라시의 애를 태운 것 같다.
《응? 응?》

센다이에서 무사히 돌아온 후, 하나에는 철저하게 봐서는 안 되는 것들을 무시해왔다.
눈을 마주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은 물론이고 평생에 걸쳐 후회하게 된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다며 인상을 썼으나 기억은 일곱 살의 봄으로 돌아갔다.

방석에 앉은 기모노 차림새의 예쁜 인형이 하나에를 향해 눈웃음 쳤다.
작은 잔칫상 위에는 반짝거리는 무지개 떡 하나와 달콤한 향이 나는 술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술잔은 크기가 너무 작아 손톱만 했다.
《어서. 사양치 말고.》
인형의 권유에 손가락만 써서 잔을 잡으니 향긋한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사과 같기도 하고 딸기 같기도 하고. 머뭇거리며 입에 가져가자 요구르트 복숭아 맛이 났다.
《잘 하였도다. 이제 떡도 맛보려무나.》
보석가루를 비벼놓기라도 한 것처럼 떡이 반짝반짝 빛났다.
하나에의 둥그러진 눈이 떡에서 떨어지지 않자 방석에 앉은 인형의 표정이 더욱 그윽해졌다.

「애들을 먹을 거로 유혹하는 건 고금 동서양을 통 털어 진리야. 헨젤과 그레텔 동화를 봐. 마녀가 과자로 집을 짓잖아.」
센다이의 뒤틀린 숲에서 이도저도 아니게 된 하나에를 세상으로 도로 끄집어낸 주술사가 했던 말이다.
「기가 막혀서. 떡이라니!」
뒷맛이 떫었기에 절반만 삼키고 절반은 뱉었기에 다행이었다.
전부를 먹었다면 돌아올 수 없었을 거라며 아이의 손을 잡은 이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운이 좋구나. 운이 좋았어.」

그걸 두고 과연 운이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연필을 입에 물고 우둑 씹었다.

Posted by 미야

2021/02/24 11:20 2021/02/2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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