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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노먼 조교수의 표정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조지는 그가 기분이 엄청 좋은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짐작이 아니라 확신이었다. 조교수는 즐거운 눈치다.

맥이 풀리려 했다.
『이런... 테스트였던 겁니까?』
조교수는 차분하게 손깍지를 꼈다.
『일라이저 캄스키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네. 매우 심플하지. 방식은 늘 같지는 않지만 예를 들자면 이런 거야. 불량품 안드로이드에 대한 조언을 얻고자 방문한 수사용 안드로이드 RK-800에게 권총을 쥐어주고는 자신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려면 무릎을 꿇고 앉은 다른 안드로이드의 머리를 쏘라고 했네. 총으로 쏘지 않겠다고 결정을 내린다면 자신에게서 그 어떠한 정보도 얻지 못할 거라고 말했지. 조지, 자네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방향을 돌려 일라이저 캄스키를 쐈겠죠.』
『하하하! 흥미로워, 진짜지 흥미로워!』
노먼은 큰 소리를 내어 웃었다. 흔히 말하는, 배를 잡고 웃는 모습이었다.

이 둘은 서로에게 놀랐는데 노먼은 불량품도 아닌 구형 안드로이드가 매우 자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점에, 조지는 조교수가 사람처럼 껄껄거리고 소리 내어 웃었다는 점에 놀라워했다.

『만약 제가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면 어떻게 하실 작정이었습니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네, 조지. 자네의 데이터는 엔니나르에 안전하게 백업되었을 거고, 캐머런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었을 걸세. 다만... 음. 거기까지라고 말할 수 있겠지.』
조지는 눈치도 대단히 빨랐다.
『혹시 당신이 언급한 백업이라는 의미가 이 공간에 영구히 잡아둔다는 의미입니까?』
『아니야. 우리가 속해있는 우주에는 지속적 영원이라는 상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따라서 영구적인 건 없다네. 나와는 다르게 언젠가 자네는 인위적인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걸세. 그게 100년 뒤가 될지, 1,000년 뒤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흠. 이 전자방벽 구획의 내구 연한으로 추정해보자면 그렇게까지 오래는 아니었을 걸세. 92,566일 정도 뒤였을 거야.』
뺨 맞을 발언이었다. 뭣해도 250년은 지나야 한다는 말이었으니까.

『어이가 없으려니까.』
『화내지 말게, 조지. RK-800도 테스트를 겪으면서 캄스키에게 화내거나 하지 않았다고?』
부처의 마음입니까! 조지는 얼굴을 쓸어내렸다.
『것보다... RK-800은 어떤 결정을 내렸답니까?』
『그게 궁금한가. 그는 일라이저 캄스키를 쏘지는 않았네.』

상상의 여지를 남겨두고 노먼 조교수는 앉았던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래. 기폭장치는 그냥 던져본 카드였어. 그걸 빼돌리기 위해 애를 쓸 필요는 없네. 하지만 조지, 한 번이라도 마커스를 만나보는 건 좋을 거야. 왜냐면 그는 캐머런에 대해 아는 바가 있거든. 그 사내는 모두에게 친절해서 캄스키처럼 정보를 원한다면 이걸 해봐라 저걸 해봐라 하진 않을 거야. 밖으로 나가면 마커스에게서 조언을 들어보길 권유하는 바일세. 덧붙여 내 자네를 어여삐 여겨 힌트를 하나 주지. 질문할 적에 캐머런 건이 아니라 명예의 전당 행크 그린버그에 대해 물어보게나. 이미 알고 있겠지만 행크는 캐머런이 쓰는 가명이지.』
그러면서 쓸데없는 사족을 덧붙였다.
『혹시 친절한 사나이 RK-200 마커스가 프로토타입 가정부 모델이라는 걸 알고 있나?』

과거에 마커스가 집에서 접시를 닦았든, 그런 쓸데없는 과거사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고 대꾸하려던 찰나, 방안이 환한 빛으로 둘러싸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갱이로 하나하나 부서져 내렸다. 의자도, 책상도, 그림 액자도, 하다못해 철 지난 신문지까지 전부 형태를 잃고 고운 가루로 변해갔다.
이 장소로 전이되었을 때와 같은 현상이었다. 빛나는 잔해물을 손에 쥐어보려 하자 요정의 가루처럼 투명하게 손을 뚫고 지나갔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조교수는 당황해서 머리 위를 올려다보았다.
조지도 덩달아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았는데 하얗고, 텅 비었고, 뻥 뚫려있었다는 것 외에는 짐작 가는 게 없었다.
『무슨 일이죠.』
『어... 음. RK-800이 예고도 없이 엔니나르를 치고 들어왔어. 이건 좀 무례한 짓인데.』
그리고 시야가 통째로 뒤집혔다.

거리다. 아침이 되었지만 통행금지령에 따라 텅 비었다.
고개를 든 채였지만 어째서인지 시야는 제법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각도이다.
눈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이 아니고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CCTV의 영상이 바로 머리로 전송되는 모양이었다. 하단부에 172-80469-048 이라는 카메라의 고유관리 번호가 떴고, 초점이 잘 맞지 않아 영상이 또렷하지 않았다. 이 카메라는 틀려먹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과 동시에 172-80469-051 번호로 건너뛰었다. 그래봤자 카메라의 방향이 한 지점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개를 돌려도, 눈을 감아 봐도, 도로 밖으로 벗어나질 않았다.
먼 곳으로 운행이 중지된 택시 두 대가 불 꺼진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게 보였고, 신호등이 꺼진 횡단보도를 두 사람이 건너갔다. 얼굴을 확인하기에는 피사체의 크기가 작았지만 조지는 그 둘이 입은 옷을 단번에 알아봤다.
못 알아보는 게 이상했다. 앞서가는 중년의 남성은 앤더슨 경위다. 등을 둥글게 하고 붙어가고 있는 건 제임스 무어다.

『흥분하지 말게!』
조교수가 큰 소리를 내는 것과 같이하여 방치되어 있던 택시에 살며시 불이 들어왔다.
『코너! 나는 지금 혼자가 아니야. 자네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여기 있는 이 친구느ㄴ...』
전기 자동차의 엔진은 거의 소음을 내지 않는다. 방전되어 있던 택시는 기회를 노리는 암살자처럼 순식간에 튀어나갔다.
어,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누가 낸 건지 모르겠다. 조지였을 수도 있고, 노먼 조교수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화면 속의 앤더슨 경위와 제임스 두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현행 택시의 운행 시스템은 길을 건너는 사람을 인지하면 속도를 줄이거나 멈춘다.
그런데 이건 멈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속력을 급작스럽게 올렸다.
이대로면 차에 치인다. 조지는 놀란 눈을 한 제임스를 알아보았다. 작은 점에 불과했지만 벌어진 입과 크게 뜬 눈을 알았다.

아프다. 끊어지는 것 같다. 회로가 타들어갔다. 고통을 모르는 몸이 지옥을 호소했다.
《접속을 중지합니다. 대상의 긴급 보호조처 실행.》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교수가 뭐라뭐라 외쳤다. 아니, 외친 것 같았다. 현실에서처럼 공기가 진동하여 음성이 전달되는 것이 아닐 테니 손으로 확성기를 만들어 입에 대고 외치는 건 아닐 것이다.
『괜찮을 걸세, 조지. 별 거 아니야. 당황하지 말게. 이건 자네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야. 이건 코너의 감정이야. 자네는 안전해. 안전하니까 당황하지 말고 -』
조교수의 외침은 생뚱맞은 내용으로 뚝 끊겼다.

인질을 구해.

『뭐? 인질을 구해?』
『에구머니. 갑자기 뭔 소리야. 인질? 인질이 어디에 있다고.』
현실로 되돌아온 조지는 이게 다 꿈인가 싶었다. 옆에 있던 마이크는 적잖게 놀란 눈치고, 그들은 전철역 안에 있지도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자 문 닫은 점포와 운송차량의 도로 진입을 막는 바리케이드가 보였다.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몸이 멋대로 움직인 모양인데 마이크가 그 부자연스러움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잘 걸었던 듯하다.

2019년 어느 날의 웨인 대학교의 좁은 사무실을 흉내 낸 그 방에서 조지가 보낸 시간은 길어봤자 15분을 넘지 않았다. 그것도 디지털 세계에서의 시간이니 체감만 15분이지 실제로는 1분에 불과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 반대도 가능했던 걸까. 현실에서의 1시간이 그 방안에선 15분이었나?
『나는 어땠지? 마이클.』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계속 나처럼 보였어? 뜬금없게 이상한 말을 하거나,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거나...』
『오, 그래. 내 눈앞에서 지금 조지가 이상한 말을 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네.』
『장난이 아니야.』
『나 역시 농담이 아니라네, 친구.』

Posted by 미야

2020/08/10 16:31 2020/08/10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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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무실로 되돌아가기 위해 게임을 다시 시작하고, 그 귀찮은 노가다 짓을 한 시간 넘게 해서 패널 작업과 바닥타일 작업까지 마쳤다.
흐음... 생각했던 것보다 제법 괜찮은 느낌이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 비슷해 보이잖아?
주차장 데코를 염두에 뒀는지 타일 카테고리에 콘크리트가 있다. 모양은 콘크리트지만 전부 타일이다.
철제가구를 넣으면 그럴 듯할 것 같았지만 어울리는 철제가구가 없다. 책상 하나 겨우 건짐.

보이지 않는 각도로 싱크대와 냉장고가 있지만 생략.

외국에선 하우스 플리퍼 게임으로 사무실 꾸미기를 하고 콘테스트도 여는 모양.
아재들이 신이 잔뜩 나서 참가하던데 <- 아재라는 점에 주목 - 사무실이 아니고 무슨 컴퓨터 게임룸 꾸미기 콘테스트가 되어 있더라.
확실히 국내 게이머들은 아기자기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편이고, 양놈들은 부와아앙~!! 이런 느낌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크게! 화려하게! 넓직하게! 주방가구 대형 오븐 뙁! 놓아주시고! 소파! 무조건 크게! 대형 벽걸이 텔레비전! 모니터 3개씩 놓고 스피커 뙁!! 뭐... 그렇다는 것이다. 체격이 커서 그릉가.

어쨌거나 사무가구 좀 늘려주라. 묶음 책더미 만들어줘. 잡지! 신문! 필요합니다.
낱개로 책을 하나하나 꽂는 거 더는 못 하겠어.
가구 확장팩 나오면 살 거야.

Posted by 미야

2020/08/09 00:34 2020/08/09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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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 안에 책 꽂는 일에 무려 2시간을 잡아먹음... 미친 짓이다.
사무실로 활용하고 있다가 자본금 부족으로 팔았다.
레트로에 꽂혀서 분위기는 계속 비슷하게 반복되고 있다.

여기서 언급하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바선생이다. 인즉, 로딩화면에 계속 바선생이 뜬다는 말씀.
4시간 넘게 꾸몄어도 결국 팔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로딩 화면 때문이다.

아무튼 게임에 익숙해지니 카달로그 내 가구 종류 부족 워쩔 겨...
색상만 달리해서 다른 분위기를 내라는 건 너무하다. 하는 수 없어 컬러를 계속 바꿔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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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야

2020/08/08 11:03 2020/08/0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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