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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수룩한 수염 탓에 마른세수가 곤란하자 앤더슨 경위는 양 손바닥으로 눈을 비벼 취기를 몰아내려 했다.
『이건 아니야. 진짜 아니야.』
이도저도 아닌 혼잣말을 하며 몇 걸음 앞서 빠르게 걸었다.
그러더니 안달을 내며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원위치로 돌아와선 제임스와 조지를 죽일 거 같은 눈빛으로 노려봤다. 노려만 봤던가, 숙제 빼먹고, 지각까지 한데다, 신발 뒤축 꺾어 신은 불량한 학생 취급했다. 으르렁거리며 위협했다는 얘기다.

『미친 인간과 미친 안드로이드가 나란히 있는데 이걸 그냥 못 본 척 할 수도 없고.』
오지랖을 부려봤자 고맙다 인사를 받게 될 것도 아니고, 잘 했다 나중에 칭찬받을 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견을 계속 해대는 건 이 둘을 내버려뒀다간 꿈자리가 사나울 거 같아서다.
맛이 간 인간과, 맛이 간 안드로이드, 거기에 맛이 간 경찰관까지 더해지면 진짜 「망할」이라고 밖에는 할 수밖에 없는 미친 조합이 완성된다는 걸 알았지만... 앤더슨 경위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상살이 마음대로 되는 법 있던가. 두드려 보고 돌다리를 건너도 꼭 미끄러운 돌멩이를 밟아 균형을 잃는다.
끙 소리를 내며 재차 눈을 비볐다. 굵은 먼지가 할퀴고 지나간듯한 통증에 편두통까지 생기려 했다. 아니, 어쩌면 안구건조증이 아니라 처음부터 편두통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너는 크랜브룩 대피소. 너는 제리코.』
물론 해가 뜨고 난 뒤에 움직여야 한다.

두 명의 인간과 한 대의 안드로이드는 맛없는 브로콜리와 당근을 먹으라고 강요받은 어린애처럼 떨떠름한 표정을 지은 채 각자를 쳐다봤다. 제임스는 방어적으로 팔짱도 꼈다.
『싫음 어쩔 건데. 그럼 안드로이드 네가 크랜브룩 대피소로 가고, 사람인 네가 제리코로 갈 거야? 진짜 그러고 싶어?』
『앤더슨 경위님, 제리코로 가라(Go to Jericho)는 말이 예전에는 「꺼져」라는 의미로 쓰였다는 거 아십니까.』
『야 인석아, 말 그대로 예전이잖아. 요즘엔 그런 표현 안 써. 그리고 꺼지라는 의미로 말한 것도 아니고! 제리코라는 명칭을 내가 붙인 것도 아닌데. 젠장, 내가 왜 변명을 하고 앉았지... 하여간 그런 줄 알고 있어.』
어른이 말을 하면 좀 들어라, 윽박지르고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앤더슨의 생각으로는 날이 밝을 때까지 죽치고 있기에 가장 괜찮은 장소는 경찰서였다.
저 둘을 유치장에 집어넣고 밖에서 문을 잠갔다가 아침에 풀어주면 시원 깔끔한 엔딩이었다.
문제는 골동품 애마, 이동수단이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오도카니 버려져 있다는 점, 익숙하지 않은 남의 동네에 와 있다는 점, 따라서 현재 위치 및 경찰서까지의 이동로를 알 재주가 없었다는 점이다.
새삼스럽게 발이 시렸다.
택시를 부르는 건 애초부터 불가능하고.
앱으로 지도를 불러오려고 했지만 역시나 핸드폰은 먹통이었다. 이번에도 앤더슨 경위는 오래된 인간다운 방법을 동원하여 전기 잔량을 낭비하고 있는 물건을 위아래 방향으로 흔들어봤다. 그런다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림만 뜨는 폰이 제대로 굴러가는 기적이 일어나진 않았지만, 어쨌든 시도를 해봤다는 게 중요했다.
이번 달에는 맹세코 요금을 내지 않겠어, 혼잣말하고 앤더슨은 핸드폰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하는 수 없지. 가까운 전철역까지 간다.』
19세기부터 건설된 미국 전철의 역사는 싫든 좋든 노숙자들과 같이 한다. 시설이 노숙자에게 점령되기를 두려워한 기관은 때맞춰 소등을 하고 역사 문을 굳게 닫았지만 이러한 정책이 도려 노숙자를 불러온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지금은 정 반대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환하게 불을 켜두고 문을 열어두면 노숙자가 편하게 눕지 못한다 –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하여 을씨년스러운 예전 모습을 벗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다시 재단장 되었다. 사람용과 안드로이드용 승강장이 분리된 것과 같은 시기의 일이다.

『이 시간대에는 전철 운행이 되지 않습니다, 경위님.』
『그걸 누가 모르냐, 이 망할 안드로이드야. 그냥 역사 안으로 들어가 있자는 얘기지! 최소한 거기엔 안드로이드 뚝배기를 깨겠다며 설치고 돌아다니는 인간은 없을 거 아냐. 무기 소지 금지 구역이기도 하고.』
『총기류는 반입이 불가능하지만 야구배트는 됩니다. 그리고 야구배트는 아주 훌륭한 무기죠.』
『그래... 야구배트가 있음 나라도 네 머리를 갈겼을 거 같기는 하다.』
『것보다 경위님, 혹시 핸드폰에 비밀번호 설정을 해두셨는지요.』
『야! 보다보다 안드로이드가 소매치기까지 할 줄이야. 내 전화기 언제 가져갔어. 내놔.』
『아니면 고장입니까?』
『내놓으라는 말 못 들었냐. 어제 자정 무렵부터 불통이라 어차피 지금은 못 써.』
『경찰이 쓰는 전화 회선까지 셧-다운 되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데...』
『세 번째 말한다. 내놔.』
『큰 실례라는 걸 알지만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모종의 이유로 정직 중이십니까.』
『잘~한다. 더 기어올라 와보세요, 안드로이드 양반. 좋은 곳으로 보내 드릴게. 사후 세계라고 들어는 보았나.』
커다란 손바닥이 조지의 등짝을 대차게 후려갈겼다.

충격에도 불구하고 전혀 아파하지 않으면서 조지가 대꾸했다.
『안드로이드에게는 영혼이 없습니다, 경위님.』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없음 하나 만들어.』
『어떻게요.』
『네놈들 제작자에게 가서 하느님 흉내를 내어 코에다 입김 불어달라고 해.』
『그러면 영혼이 생깁니까.』
『안 생겨.』
심성이 끝내주게 비비 꼬인 사람이었다.

대화가 말다툼 비슷하게 흘러가는 와중에 제임스가 조지의 어깨를 가볍게 콕콕 찍었다.
그만 싸우라는 의미는 아니어서 제임스의 시선이 엉뚱한 방향으로 향해 있었다.
신호를 보낸 건 저기를 보라는 뜻이었다.

어둠으로 인해 판별력을 잃은 제임스는 원통형 쓰레기통을 머리 위로 인 희끄무레한 인영을 보았고, 보완 센서로 상세하게 사물을 볼 수 있었던 조지는 검은 셔츠에 흰색 바탕으로 인쇄된 작은 크기의 홈디포 철물점 로고를 확인했다.
철물점 로고가 머리에 쓰레기통을 이고 좌로 갔다 우로 갔다 반복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만약 그가 우산을 들고 있었다면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의 주인공 돈 락우드다. 물웅덩이에서 물장구를 치는 대신 쌓인 눈 위에서 미끄러졌다는 차이가 있지만 – 어차피 제임스의 어중간한 시력으로는 구분이 안 갔다.
인상 깊었던 건 쓰레기통이다. 공원 벤치 옆에 설치해두는 그런 종류로, 당연한 소리지만 냄새 지독한 그걸 머리 위로 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다.

50대인 앤더슨의 시야에는 더 흐리게 보였던 것 같다.
『저기서 뭐가 왔다 갔다 하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와장창 굉음이 들렸다. 마이클이 이고 있던 양철 쓰레기통을 던졌다. 아니, 그보다는 쓰레기를 사방에 뿌렸다. 쓰레기통을 냅다 던진 건 그 뒤다.

『더러운 안드로이드 자식!』
『틀렸어. 나보다 네 녀석들이 더 더럽다고! 아유, 쓰레기 냄새!』
하이에나 떼 같은 사람들을 혼자 상대하면서 뭐 하러 약을 올리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럴 시간에 걸음아 나 살려라 달아나는 게 이득일 거 같은데.

Posted by 미야

2020/06/30 12:56 2020/06/30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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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실행이 되질 않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팀에서 PC판 저니를 샀더니 플라워를 공짜로 줬습니다.
라이브러리에 있는지도 몰랐다가 발견하곤 놀라서 플레이를 해볼까 하고 설치를 했는데...
무반응이네욤. 꺄르륵.
최저 사양 지포스 GTX650 이라메. 최소 옵션으로는 돌아가줘야 하잖여. 내 컴퓨터 고물이네. 꺄르륵.

저니는 플레이가 됩니다.
마지막 챕터까지 왔는데 폭풍 뚫고 올라가다 조작 미숙으로 맨 아래 출발지점으로 떨어져 버리네요.
이게 항아리 게임이냐, 항아리 게임이냐고~!!!

저니 플레이를 하다보면 가끔 이쪽으로 이렇게 오심 됩니다 도와주는 분이 있으신데 친절한 분도 있으나 계속 신호를 보내며 서둘러라 눈치 주는 분도 있습니다. 그다지 달갑지 않습니다.

Posted by 미야

2020/06/29 14:27 2020/06/29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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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cking 안드로이드.

하루라도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없어 사실상 알코올 중독이었다.
오늘만큼은 입에 대지 않아야지 결심해놓고 무의식중에 스카치위스키의 뚜껑을 땄다. 컵에 갈색의 액체를 따르고 난 다음에야 자신이 술을 마시려 한다는 걸 깨달았다.
의지박약을 욕하며 컵에 담긴 술을 버렸다.

음...... 개수대에 버린 게 아니라 입안에 버렸다는 걸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치만 딱 한 잔이었다. 아무리 뼛속까지 망가진 인간이라도 금주선언 하루 만에 고주망태가 되어버리는 쓰레기까지는 되지 않았다. 하여 마음 독하게 먹고 술병을 안 보이는 곳으로 치웠다. 그러니까 산더미처럼 쌓인 빨랫감 속에 대충 밀어 넣었다는 얘기다.
언젠가는 세탁기를 돌려야할 테니 술병의 위치는 발각될 것이다. 그래도 세탁기 전원을 켜는 날이 내일 당장은 아니다. 독실한 신자가 아니었어도 행크 앤더슨 경위는 성경 말씀대로 주말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온전히 쉬는 사람이었다. 천지를 창조하신 이도 쉬었으니 피조물인 인간이 쉬어야 함은 마땅하다. 심지어 그는 샤워조차 안 했다.

망할 놈의 총소리가 들려오지만 않았어도.

국가 시스템은 붕괴 일보직전이었다. 대통령은 중요 기반 시설을 유지 보수하던 안드로이드를 업무에서 제외시키고, IT 통신 접속권한을 차단했다. 끌어 모을 수 있는 모든 병력을 – 사실상 인간 병력 전부를 원자력 발전소와 미사일 기지 같은 민감한 장소로 이동시켰다.
대통령과 참모진은 이러한 조처로 미국의 안보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모든 사안에 대하여 낙관적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막연히 잘 될 거라 기대를 걸고 현역 병력의 65%가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에서 애써 눈을 돌렸다. 적군에게 아군 65%가 격퇴당하고 35%의 병사만 남은 상황이면 싫든 좋든 이미 망한 거였다. 선택지는 항복문서에 사인하는 것만 남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사람들은 참으로 오만했다.

모든 민간인 이동이 통제된다고? - 웃겼다. 버스터미널에 몰린 그 인파는 그럼 뭔가.
모든 집회는 금지된다고? - 환장하겠다. 종교집회랍시고 모여 마네킹을 교수형에 처하던데.
모든 전자통신이 제한된다고? -
아, 가만있자. 이건 안 웃겼다.

2038년 11월 13일 토요일 PM 11시 15분.
은행이고 병원이고 소방서고 죄다 마비상태인데 드디어 핸드폰까지 맛 갔다. 전원은 켜져 있었지만 번호를 눌러도 신호가 가지 않았다. 오래된 인간인 행크 앤더슨은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를 고쳐보려고 했다. 그러니까 고장 난 TV수신기를 다루는 요령으로 액정을 팡팡 때렸다는 얘기다.

밖에서는 드물게 총성이 울렸다.
앞서 언급했지만 인간 병력은 원자력 발전소와 군사시설을 우선으로 지키기 위해 도시를 벗어났다. 따라서 이 야밤에 총을 쏴 갈기고 있는 것들은 정상적인 종류가 아니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잠옷 차림새로 창가에 섰을 적에 그는 주황색의 섬광을 보았다.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2초 뒤에 창문이 크게 흔들리고 실금이 갔다. 하트 플라자가 있는 방향이었다.

『일요일엔 하느님도 쉰단 말이다. 그런데 왜.』
폐차 일보직전의 고물딱지 자동차에 경광등을 달고 시동을 걸었다.
따뜻한 바람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운전대를 쥔 손이 추위에 꼽아 들어갔다.
『월요일엔 사표 쓸 거야.』
20년 전에 끝낸 거리순찰을 은퇴를 앞둔 마당에 마지막으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좌우로 덜컹거리는 강철의 애마를 살살 달래가며 그렇게 앤더슨 경위는 도로 위로 나왔다.

언뜻 느끼기엔 여름휴가 마지막 날의 밤 같았다.
그러니까 오만가지의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죄다 뒤섞였다는 얘기다. 흥분감, 고양감, 지루함, 피로감, 긴장감, 허탈감, 박탈감, 기타 등등. 거리는 소란스러웠고, 동시에 조용했다. 축제의 끝과 일상생활의 시작이 막 교차하는 지점으로 날 것 그대로의 어둠이 긴 다리를 뻗고 있었다. 이도저도 아닌 혼란, 이도저도 아닌 침묵, 빡빡한 눈을 비벼가며 좌우방향으로 거리를 살폈다.
야간 통행금지령이 무색하게도 느껴지는 기척이 많았다.
야생사슴과 늑대가 무리지어 돌아다니는 숲속에 나침반 하나 없이 들어와 있다는 기분이었다.

《돌아가시오. 여기서부터는 지나갈 수 없음.》

주택가에서 빠져나와 해밀턴 애비뉴 방향으로의 큰 도로로 진입하기도 전에 거대 콘크리트 바리케이드가 이동을 막았다. 용의자의 도주로를 차단하기 위해 경찰이 써먹는 종류와는 차원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거대 해일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육중함에 높이도 어른 키 정도 됐다. 픽업트럭으로는 덤벼봤자 무리이고, 중대형 트레일러로 밀어붙이면 승부가 날지도.
앤더슨 경위는 열쇠를 꽂은 상태로 자동차에서 내렸다.

그렇게 두 발로 걸어 바리케이드를 넘으려는 순간, 깜빡했다며 차로 엉금엉금 돌아와 글러브 박스를 열었다. 글로브 박스라는 이름과 달리 안에는 장갑은 들어가 있지 않았고, 대신 내용물이 손가락 마디 정도 남은 위스키 병이 하나 있었다. 술병을 주머니에 넣은 앤더슨은 아이고 춥다 한 번 엄살하곤 터벅터벅 시작했다.
양말을 두 겹으로 신고 나올 걸 하고 후회한 건 그로부터 1시간 뒤다.

『할아범, 혹시 거시기 필요하우? 좋은 거 있는데.』
『꺼져.』

쥐새끼는 무시하고 계속해서 걸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로 사람들이 둥글게 모여 뭔가를 밟고 있었다.
야간 민간인 통행금지령? 개 소리.
길을 잃은 게 분명한 안드로이드가 엎드린 채 몰매를 맞고 있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기계는 비명 같은 건 지르지 않았다. 거기서 짐승처럼 거칠게 호흡하는 건 죄다 사람이었다. 린치를 당하는 쪽은 조용하고, 린치를 가하는 쪽은 악을 쓰고 쌔근거리는 게 참 이상했다.
『꺼져!』
권총을 집에 두고 나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앤더슨은 그래서 글로브 박스에서 꺼내온 술병을 높게 들었다.
빨간색 물감을 칠한 조잡한 십자가 목걸이를 목에 걸고 있던 사람들이 이런 몹쓸 술주정뱅이를 보았나, 식의 시선을 보내왔다.
상관하지 않고 외쳤다.
『꺼져! 꺼지라고!』
술병으로 대가리를 깨버리겠다는 위협은 안 먹혔어도 경찰 배지에는 반응했다.

『경찰이라면 안드로이드 불량품을 잡아야지 왜 시민을 폭행하려고 해!』
『맞을 짓을 하니까 그런다. 제기랄!』
『당신, 신고할 거야.』
『네놈 전화기는 잘 터지냐? 신고하고 싶음 신고해. 마음대로 하라고. 나도 마음대로 할 테니.』
그리고는 경찰 배지를 인간의 콧잔등에 대고 마구 문질러버렸다.

『나는 불량품이 아닙니다, 선생님.』
『그게 중요해? 꺼져! 어디로든 가버리라고!』
일으켜 세운 안드로이드를 아무렇게나 밀었다. 진짜로 화가 나서 밀었다.

『경찰이 사람을 폭행한다!』
『어디서 구라질이야! 꺼져!』
『저 인간 돌았어. 제정신이 아니야.』
『그래. 나 미쳤다. 그러는 니들은 멀쩡한 줄 알아?! 꺼져!』

병뚜껑을 열고 남은 것 전부를 입안에 한꺼번에 털어 넣었다.
독한 알코올에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갔다.
『씨발, 금주하기로 했는데.』
코를 훌쩍이는데 총성이 들렸다. 이번엔 제법 가까운 장소였다.

2038년 11월 14일.
태어나 가장 길게 느껴졌던 역사적인 일요일 하루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Posted by 미야

2020/06/26 13:17 2020/06/26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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