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J-fic] Brownie 36

각각 분장을 마치고 배우들이 한 장소로 모여들었다.
이제 그는 젠슨이 아니라 딘이다. 제법 익숙하다 싶은 실루엣을 향해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바비. 잘 지네셨죠?』
『잘 지내긴 했는데... 날세, 황달이.』
둥글둥글한 자갈 바위가 황당해하는 목소리를 냈다.

상대방의 퉁명스런 대꾸에 젠슨은 적잖케 당황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의 직업은 배우였다.
철통 같은 냉정함을 가장하고 얼른 변명했다.
『장난이었습니다.』
『헬로우~? 나는 이곳에 있다네. 그쪽은「어쩌다보니 훼까닥한」데몬 역을 맡은 엑스트라 12번. 자넨 코미디언으로서의 자질은 꽝이구먼! 어디 가서 사람 웃기겠다고 노력하지 말게.』
전용 렌즈를 착용하기 전의 옐로 아이즈 데몬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댔다.

눈 뜬 장님 신세라는 건 이래서 골치가 아프다.
『괜찮겠어요? 젠슨.』
『사실대로 말하자면 하나도 안 괜찮아. 난 지금 네가 제러드 파달렉키가 아니라 에디 머피라고 주장해도 그대로 속아 넘어갈 거야.』
제러드의 이마에 굵은 고랑이 파였다.
『어. 무진장 심각한데... 도대체 시력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바닥이야. 네 콧구멍이 두 개가 아니라 하나로 보인다고.』
원래 시력도 좋지 않은데다가 열까지 마구 오르고 있는 실정이다. 물방울이 하나 가득 맺힌 자동차 유리창을 통해 거리를 쳐다보는 기분이다. 세부를 상실한 사물들이 온통 뿌옇게만 보였다.

덩달아 긴장 모드에 들어간 제러드가 비밀 이야기를 한답시고 자세를 낮췄다.
『좋아요. 우리는 엑스트라 8번에게 쫓겨 철망으로 가로막힌 골목으로 뛰어들어야 해요.』
『악마에게 빙의된 남자 A지?』
『그는 짙은 파란색 점퍼를 입었어요. 얼굴은 구분이 안 가도 색깔은 알아볼 수 있죠?』
『오케이. 그 다음으로 나는 바닥으로 슬라이딩 하면서 총을 쏠 거야. 상대는 엑스트라 11번.』
『갈색 니트예요.』
『옳커니. 파란색 점퍼에게 등돌리고 달아나서, 갈색 니트에게 총을 쏜다는 거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어요, 젠슨. 엑스트라 11번 옆에는 유모차를 끌고 가는 젊은 부인이 있어요. 총구를 향하는 방향이 헷갈리면 안 되요.』
『여자는 무슨 색이냐.』
『검정.』
『좋았어. 검정... 검정... 유모차에 대고 발포하면 안 된다. 접수했어.』
『유리창이 깨지고 경보장치가 울려요. 샘은 딘을 부축하고, 두 사람은 다시 달리기 시작해요. 어느 쪽이냐 하면... 음. 빨간색 간판이 있는 방향이예요.』
『검정 다음엔 빨강.』
『헷갈리지 않겠어요?』
『나는 바보가 아니야, 슈가 보이. 파랑, 갈색, 검정, 빨강. 됐지?』
『예.』
마지못해 대답하던 제러드는 감독의 신호를 보고 자리를 떠났다.

평소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천근만근이었고, 이젠 식은땀까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사소한 것들이 봉지 속 팝콘처럼 뒤섞이고, 신발 밑창으로 끈적이는 껌이 들러붙었다. 어깨로는 투명한 밧줄이 달려 팔을 위로 당겼다 아래로 놓았다 멋대로 굴고 있었다.

엉거주춤 달려나가면서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좋아, 할 수 있어. 순서대로 차근차근 하는 거야. 파란색을 피해 달아난다.」
미끌어진다 싶게 자세를 낮추며 뒷춤에서 총을 꺼내 다음 타깃을 조준했다.
「이런! 갈색이 없잖아! 어디로 갔어!」
흠칫해서 공갈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걸 머뭇거렸다.
「안돼. 검정은 유모차!」
이건 아닌데 싶었지만 젠슨은 순서에 맞춰 빨간색 가판대가 있는 쪽을 향해 계속 달려나갔다.

『뭐지. 저 친구, 지금 일부러 저러는 거야?』
반대편으로 혼자 제멋대로 뛰어가더니만, 통행인이 끼어드는 걸 막고자 자리를 지키고 선 스텝에게 들입다 총구를 들이밀고,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핫도그 판매대를 향해 돌진?

제러드는 얼른 변명했다.
『아직 리허설이잖아요.』
그리고는 핫도그 간판을 부둥켜 안고 헉헉거리고 있는 젠슨을 붙잡으러 갔다.

Posted by 미야

2008/01/24 15:37 2008/01/24 15:37
Response
No Trackback , 5 Comments
RSS :
http://miya.ne.kr/blog/rss/response/761

Trackback URL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Comments List

  1. oka25 2008/01/24 19:05 # M/D Reply Permalink

    ㅋㅋㅋㅋㅋ어떻게요~젠슨 아픈데 상황이 너무 웃겨서 ㅋㅋㅋ 언제까지 숨길수 있을짘ㅋ

  2. 로렐라이 2008/02/21 14:45 # M/D Reply Permalink

    젠슨 어떻게합니까 ㅠㅠ ㅋㅋㅋ 한동안 푹 쉬어야 할것같은데 말이죠..^^;

  3. 박하사탕 2008/06/19 05:12 # M/D Reply Permalink

    선 리플.

    계속 눈팅으로 일긱만 하다가
    어느새 여기까지 달렸네요 :D
    이번화도 너무 기대됩니다. 후후

  4. 샤콘피스 2008/09/18 07:10 # M/D Reply Permalink

    아아아;;;; 정말, 상황이 웃겨서 아픈 젠슨의 상태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5. 탱구리 2008/11/28 12:40 # M/D Reply Permalink

    저도 모르게 들어왔다가 단숨에 다 읽었네요...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285 : 1286 : 1287 : 1288 : 1289 : 1290 : 1291 : 1292 : 1293 : ... 1972 : Next »

블로그 이미지

처음 방문해주신 분은 하단의 "우물통 사용법"을 먼저 읽어주세요.

- 미야

Archives

Site Stats

Total hits:
990501
Today:
140
Yesterday:
141

Calendar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