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어린아이는 사고를 쳐야 어른이 된다
※ 오리캐 주인공 BL 호러물입니다. 의성조, 소년조 위주.
지명을 포함하여 잘 모르는 부분은 지어냅니다. 원작자의 팬픽 규정을 준수합니다.
마도조사 소설과 드라마 진정령의 타임라인이 틀린 관계로 여기서도 사건 흐름이 뒤틀려 있습니다.
지금은 평화 시기다.
하지만 고작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가문끼리 연합하여 대항쟁전을 벌여 엄청난 숫자의 사람이 죽어나갔다고 하니 여파가 여전히 잔불처럼 남아있다고 봐야 했다. 이 세계는 빠르게 변화하지 않았고, 앙금은 엿가락처럼 늘어졌다.
그래서 이릉노조 위무선이 죽은 지 ‘아직’ 11년밖에 흐르지 않았다. 아직도 길바닥에서 노는 아이들은 이릉노조 흉내 내기 놀이를 한다. 그러니까 울트라 빔을 맞고 쓰러지는 최고의 빌런 역으로 말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이릉노조를 기억했고, 증오했고, 가끔은 추종했다.
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상주 허씨가 이릉노조 추종자야?”
내 질문에 금릉이 화들짝 놀라며 그 무슨 밥 먹다 돌 씹는 소리냐고 따졌다.
“뭔 소리야. 넌 뭐든지 이릉노조와 연관시키는구나.”
남경의도 맞장구를 쳤다.
“이릉노조 추종자는 너잖아. 상주 허씨는 감시대 건립에 필요한 운영비 각출에 불만이 많았던 거겠지.”
외진 곳에서는 주시가 발생해도 빠른 대응이 어렵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선문세가로 소식을 넣어도 한 세월이고, 설령 소식이 도착해 수사들이 도착해도 한세월이다. 그동안 이미 주시들은 밭을 점령했다.
그런 폐단을 줄이고자 깡촌에 감시대를 세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자 했다.
의도는 좋다. 그리고 효과도 좋다.
다만 모든 복지 서비스는 공짜가 아니다.
“결국 돈 문제라고?”
맥이 풀리는 결론이지만 한두 푼이 들어가는 사업이 아니니 심각한 분쟁을 일으켰을 거라고 나름 추측해볼 수 있다.
남경의가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은 접시를 안타깝게 쳐다보며 말했다.
“감시대 건립 반대는 핑계고 염방존이 무작정 싫었던 거겠지. 겉으로는 손바닥을 비벼도 선독이 서자 출신이라고 얕보는 놈들은 많거든. 죄다 돌아서선 딴 짓이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탁자가 덜컹 흔들렸다.
보이지 않는 시선 아래서 한바탕 발차기와 걷어차기가 오고간 눈치다.
나야 높으신 분들의 속사정 따위는 알 바 아니고, 겉으로 보기에 세 녀석들의 안색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누가 발로 차고, 누가 맞은 건지 내 눈엔 구분도 안 갔다.
알게 뭐람. 서자 출신인 게 뭐 어떻다고. 영조는 무수리를 엄마로 뒀어도 조선의 왕이 되었다.
그보다는 염방존이 이참에 눈엣가시 하나를 치워버린 느낌이라 그게 마음에 걸린다.
이 세계는 재판 같은 것도 없는 세상이다. 무슨 증거로 상주 허씨가 범인으로 몰린 건지 모르겠다.
어쩌면 증거 같은 건 없었을 수도 있다.
중세시대엔 점 부위에 바늘을 찔러 넣어 피가 나오면 유죄였다. 가끔은 피가 나오지 않아도 유죄였다.
법치주의에 익숙한 나는 불편함을 느꼈지만 여기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다.
피해자인 나에게 사건에 대해 물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범인이 누구라고 결론까지 났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얌전히 입 다무는 거다.
수살귀를 조사한다는 핑계를 대고 나왔으니 조사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나.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소화도 시킬 겸 냇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물살이 그다지 세지 않은 곳이어서 여름에 물놀이를 하면 좋을 것 같은 장소여서 수살귀와는 인연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재작년과 작년 연속으로 비가 많이 온 뒤 익사자가 나왔다고 한다. 저래보여도 갑자기 깊어지는 곳에선 물살이 소용돌이치는 경우도 있으니 만만하게 보아선 안 된다. 같은 장소에서 익사자가 연거푸 나올 적엔 귀신 장난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물속 흐름이 문제인 경우가 태반인데 그래도 일단 확인이다.
“물에 빠지는 건 둘째고 자갈이 미끄러워 뒤통수가 깨져 죽을 거 같다.”
금릉이 투덜거렸다. 말로는 그러면서도 물고기를 잡고 싶어 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금릉의 눈이 거뭇거뭇한 물고기 그림자를 부지런히 쫓고 있었다. 마치 어항에 사로잡힌 고양이처럼 말이다.
물가에서 떨어진 산속에 살고 있는 남씨네 두 소년들은 상대적으로 물고기에 대한 관심이 적었지만 성실하고 근면한 운심부지처 사람답게 익사자가 나왔다는 곳까지 가서 냇가의 너비라던가, 물살의 흐름 같은 걸 살펴봤다. 단, 어디까지나 형식적이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조약돌을 주워 누가 멀리 던지나 내기를...
“아니거든요!”
남사추가 결코 아니라며 많이 억울해했다.
“그러니까 약간의 영력을 넣어 돌을 던지면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요괴가 반응을 일으킵니다.”
“아하! 물속에 있는 요괴가 머리 위로 돌이 떨어지면 화를 낸다는 거구나?”
“아뇨. 그냥 마구잡이로 돌을 던지는 게 아니라 영력을 조금 불어 넣어 요령껏... 표정이 이상한데요. 농담이 아니고 진짜입니다.”
“내 표정이 어때서.”
“걸람. 방금 웃었잖아요!”
“착각이야. 안 웃었어.”
일단은 시치미를 잡아떼고 신발을 벗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다.
“뭘 확인한다는 건데.”
“중간에 옷이 걸려 있잖아. 누가 빨래하면서 흘린 모양인데. 주워와야지.”
떠내려가다 재수 좋게 도중에 걸렸는지 남자의 중의로 보이는 옷이 물속에서 어른거렸다.
옷은 제법 비싼 물건이다. 빨래하다 옷을 잃어버린 사람은 큰 낭패를 본 거다. 건져서 대충 널어놓고 있음 찾으러 올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이라고? 어디에?”
금릉에 물음에 나는 옷이 보이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런데 금릉의 눈엔 물속에 잠긴 옷이 잘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계속해서 어디? 어디? 이러고 찾기만 했다. 답답해진 나는 첨벙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두어 걸음 들어가 저기라며 다시 손으로 가리켰다.
깊은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니 차라리 그냥 걷어 와서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를 것도 같았다.
남사추와 남경의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선배들 말씀에 보고서를 쓰려고 하면 없던 요괴도 나타난다고 하더니만.”
“하지만 이런 장소에? 너무 뜬금없잖아. 게다가 물의 깊이도 수살귀가 나오기엔 너무 얕아.”
“분명 일반적이진 않네. 뭐, 어쨌든 썩 좋은 종류가 아니니 없애고 보자. 걸람? 거기서 꼼짝 마세요. 더 가까이 가면 그것이 발목을 잡아당길 겁니다.”
경고와 동시에 떠내려 온 빨랫감이 슈슉 이러고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남경의가 먼저 검집에서 검을 뽑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뒤이어 남사추도 검을 뽑아들었다.
금릉은 어이없어 했고 나는 당황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옷이 몸에 들러붙은 상태로 무릎에도 오지 않는 얕은 물에 첨벙 주저앉았다.
“뭐시여? 이게 수살귀라고?!”
“수살귑니다.”
남사추가 내 몸에서 달라붙은 옷가지를 떼어내고 영력을 불어넣은 검으로 찔렀다.
뭔가 이상했다. 그건 요괴라기보다는 그냥 무단으로 버려진 쓰레기로밖엔 안 보였으니까.
“진짜로?”
“수살귀가 무서운 건 배 밑바닥이나 헤엄치는 사람에게 들러붙어 수면 아래로 끌어들이기 때문이에요. 겉모습은 대수롭지 않죠. 해초가 뭉친 모양이거나 이것처럼 사람이 벗어던진 옷 모양입니다. 이런 게 수백 단위로 나타나면 배가 침몰합니다.”
“옷 모양이 아니고 그건 그냥 옷인데?”
“간혹 익사자가 입고 있던 옷이 수살귀로 변하는 경우도 있지요.”
붕대를 슬그머니 내리고 왼쪽 눈으로 보자 물비린내 날 것 같은 젊은 남자의 하얀 팔뚝이 보였다. 화들짝 놀라 얼른 붕대를 제 위치로 돌려놓았다.
마을로 돌아와 작년에 물에 빠져 죽은 이가 누구냐 물어보니 허씨 성을 가진 남자라고 했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혹자는 노름과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자 실의에 빠져 자진했다고도 했고, 누구는 술을 너무 마셔 야밤에 실수로 물에 빠졌다고도 했으며, 또 다른 이는 아름다운 기생에게 반해 연심을 바쳤지만 거절당한 충격으로 죽은 거라고도 했다.
이유는 어떻든 간에 물에 빠져 자살하기엔 발견된 장소의 깊이가 너무 얕았다.
“그거야 비가 많이 온 뒷날이었거든요.”
그렇게 말한다면야 할 말이 없기는 하다.
어쨌든 수살귀를 처치했으니 올해는 익사자가 나오지 않을 거라며 남경의와 남사추가 크게 기뻐했다.
“쳇, 어쩌다 수살귀 한 마리 잡은 거면서 좋아하긴.”
그 옆에서 금릉이 툴툴거리며 싫은 내색을 했다. 말로는 그까짓 걸로 저렇게까지 기뻐하냐 흉을 보았으나 질투하는 기색이 뚜렷했다.
수살귀를 때려잡는 건 물가에 사는 운몽 사람들의 특기라면서 제 외숙부를 보러 가겠다고 몸이 달아 어쩔 줄 몰라 하는 걸 보면 분명 질투였다.
그래. 외숙부에게 비법을 전수받고 돌아와라.
돌아와서 나 좀 도와주도록 하고.
뜻하지 않게 곤경에 빠진 나는 어디서 굿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근심에 잠겼다.
“인석아! 바닥에 물을 또 질질 흘렸잖아! 걸레 가져와, 걸레!”
영력을 넣은 검에 찔렸으면서 기어코 사람에게 들러붙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마시던 차를 엎지른 것처럼 내 주변으로 정체불명의 물이 흥건했다.
양이 어중간한 관계로 옆에선 죄다 내가 실수를 저질렀다 생각했다. 물이 뚝뚝 흐르는 젖은 빨래를 옮겼다고 오해도 받았고, 양동이를 엎질렀다고 야단도 맞았고, 선자가 오줌을 쌌는데 치울 생각은 않고 보고만 있었다고 비난도 들었다.
“개의 오줌이라면 냄새가 나겠죠. 하지만 이 물에선 지린내가 안 나잖아요.”
“그래서 아니라는 거야?! 이게 어디서 변명을 하고 앉았어!”
어서 치우라며 걸레가 얼굴을 향해 날아들 적에 정말이지 살심이 돋았다.
“수살귀라며! 퇴치했다며! 익사자가 더 이상 안 나올 거라며!”
전화 같은 수단이 있음 운심부지처에 연락을 넣고 따졌다.
그러나 문명의 이기에 기댈 수 없으니 어쩌겠는가. 음기 가득한 내 체질이 문제라고 자포자기하고 엎드려 바닥에 떨어진 물방울을 닦아냈다.
약을 올리려는 건지 닦은 자리에 다시 물방울이 뚝뚝 흘렀다.
걸레를 쥔 손에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갔다.
“아니 도대체 왜! 나랑 무슨 원수가 졌다고!”
왼쪽 눈을 가린 붕대를 치우고 위를 올려다보자 물미역처럼 뭉친 사람의 기다란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 순간만큼은 화내는 것도 잊고 비명을 질렀다.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사람이 물미역이 되면 ‘전설의 고향’ 드라마에서나 보던 귀신이 된다.
제법 무서웠다.
Posted by 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