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일상생활77

※ 미드 Person Of Interest 팬픽입니다. ※

그는 글쟁이다. 지금까지 머리로 오만가지 내용을 상상해봤다.
숲속에서 살인곰을 만나면, 절벽에서 추락할 위기에 처하면, 무인도에 고립되면, 공룡을 닮은 악어에게 쫓기게 되면, 외계인과 조우하면, 그리고 흉악한 범죄자와 마주치면 - 이렇게 움직여 위기에서 벗어나야지.
머리로 장면을 그려보았을 적엔 제법 그럴 듯해 보였다. 그는 몽둥이를 휘둘러 살인곰을 때려잡을 수도 있었으며, 날카롭게 다듬은 돌조각으로 작살을 만들어 무인도에서 물고기 사냥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총을 든 악당 앞에선 끝내주는 뒤돌려차기를 선보였다. 그러니까 생각으로는 그게 가능했다.
자, 이제 실제 상황으로 돌아와서.
『......』
몸이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졌다. 아뵤~ 이소룡의 기합을 넣어 흉기를 쥔 손모가지를 비틀어버린다는 웅장한 계획 어쩌고는 사막의 열기에 노출된 잡초처럼 금방 시들어버렸다.
그럼 공격은 관두고 도망치는 건 어떨까 - 그것이야말로 웅대한 포부다. 다리가 덜덜 떨렸다.
다만 평소에도 무모한 짓을 곧잘 하는 그의 친구는 잽싸게 잘도 움직여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총구에 노출되었다는 것 정도로는 그를 겁먹게 만들 수 없다. 위대한 천재는 협박을 무시한 채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그리고는 -
『에헤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속설은 거짓이다. 검정의 양복 차림새의 악당이 화를 벌컥 냈다.
『로건 피어스! 당신~!! 계속 우리 일을 훼방 놓을 작정입니까! 도대체 무슨 속셈이죠.』
『무슨 속셈이라니... 음. 덧셈?』
『나눗셈이고 뺄셈이고 지금 농담 할 기분이 아닙니다!』
권총을 든 왼손을 뒤로하고 주먹을 쥔 오른손이 앞으로 빠르게 튀어나왔다. 얻어맞는다고 생각한 로건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사내의 주먹은 콧잔등 바로 앞에서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멈췄고,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던 로건은 누가 건드리지도 않았건만 풍압에 떠밀려 뒤로 휘청거렸다.
이딴 광대극은 그만하자며 양복의 사내가 정색했다.
『저 사람을 때리려니 내 주먹이 아깝군요. 자! 마이클. 갑시다!』
『아니, 저, 그.』
몸만 굳은게 아니다. 혀도 굳었다. 지금 날 납치하려는 건가요 - 라는 질문이 목구멍 안에서 빙빙 맴돌았다. 겨드랑이를 꽉 붙잡힌 상태에서 간절히 애원하는 눈빛으로 로건을 돌아다보았다. 살려줘, 로건! 지금 날 도와주면 평생 노예처럼 부려 먹겠다 해도 불평하지 않겠어! 어버버 입을 움직이며 식은땀을 흘려댔다. 판단력은 이미 제로 상태, 눈가리개를 한 것도 아닌데 시야가 캄캄해졌다.

다행스럽게도 로건이 그들 뒤를 졸졸 따라왔다.
무슨 영문에서인지 양복의 사내는 촐랑거리는 로건을 보고도 그냥 내버려 두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이해 못 하겠다. 마이클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로건! 설명 좀 해봐! 로건!』
그런데 패닉에 빠진 당사자는 내버려두고 둘이서만 대화하기 시작했다.
『당신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어요, 피어스. 처음엔 우연인가 싶었는데 교묘한 타이밍에 항상 마이클을 빼돌리더군요.』
『그야 적을 혼란시키려고 그랬죠.』
『보디가드인 즈비를 시켜 우리가 설치한 도청기를 전부 수거해간 것도 적을 혼란시키기 위해선가요? 음?』
『그걸 누가 달아놓았는지 어떻게 알아요. 아무런 표식도 없는데. 정 뭐하면 거기에 이니셜이라도 써놓지 그랬수. 그럼 댁들의 노력을 충분히 배려했을 겁니다.』
『참말로 그랬겠다.』
『얼씨구? 그 의심하는 눈초리가 뭡니까. 그렇게 노려보면 상처받는다고요, 존. 날 그렇게 못 믿어요? 중국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우리는 평생 서로를 돌봐줘야 하는 사이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농으로라도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소름 돋습니다. 게다가 나와 당신은 중국인이 아니잖습니까.』
『그런가? 하지만 차이니스 레스토랑에 가서 볶음밥을 자주 먹는데.』
『볶음밥을 100만번 먹는다고 중국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피어스.』
『에이, 그러지 말고 로건이라 부르... 아얏!』
이해한다. 거기서 주먹이 나가는 건 폭력 말고는 저 주둥이를 닥치게 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행이 지하주차장까지 내려왔을 적에 로건이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즈비가 프론트 입구에서 두 명을 막았어요, 존.』
『나머지 한 명은?』
One Lost 라고 글자가 박힌 핸드폰을 흔들어대며 로건이 대답했다.
『놓쳤다네요.』
『그 사람에게 보너스 지급은 하지 말아요. 전직 모사드 요원치곤 실력이 영 꽝이군.』
어미가 새끼 고양이를 옮기는 요령으로 마이클의 목덜미를 붙잡은 존은 서둘러 자동차에 올라탔다. 조수석에는 마이클이, 뒷좌석에는 로건이 허겁지겁 자리를 잡았다.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던 찰나 대머리가 인상적인 남자의 음영이 정면에서 어른거렸다. 사내는 매우 빠르게 움직였고 이어서 쾅쾅 대포 터지는 굉음이 들렸다. 가뜩이나 소리가 울리는 장소에서 총성이 반사되니 영화에서 듣던 것과는 느낌이 아주 달랐다. 대형 폭죽이 코앞에서 날뛰고 있다는 감각이다. 대머리 사내의 손끝에서 노란 불꽃이 점멸했다. 운전대를 잡은 사내는 겁도 없이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자칫하면 사람을 자동차로 치겠다」걱정하던 찰나 존이 오른팔을 들어 마이클의 머리를 눌렀다.
『숙여요.』
그들을 향해 총을 쏘아대던 괴인이 다이빙을 하는 자세로 옆으로 몸을 날렸다.
아슬아슬하게 사람을 스치고 지나간 자가용은 출입구를 방향을 향해 그대로 질주했다.
『소, 속도를 낮춰요. 이러다가 벽에 박겠어요~!! 으다다다다~!!』
겁에 질려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쨌든 존의 운전 실력은 제법 상당했다. S자 곡예를 보이고도 속도는 전혀 안 줄었다.

『당신 책 말입니다.』
『내 책?!』
『실제 사건을 취재해서 소설에 적용시켰죠?』
『어, 그, 뭐... 그런데 왜?』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 마이클의 뒤통수를 향해 로건이 팔을 뻗었다.
『이 친구는 의외로 바보라서 자기 작품이 왜 인기가 있는지도 모른다고요, 존. 칼에 찔려도 죽지 않고, 쿵푸를 하는 여자 형사가 등장해서 과연 인기였을까? 그건 아니지. 실감나는 악당이 묘사되고, 억울한 피해자가 등장하고, 이를 끝까지 추격하는 자경단이 있으니 짜릿했던 건데 말예요. 게다가 설명되는 사건들 다수가 실제에 가까우니 현실감 쩔어주지. 마이클? 본인은 쓰레기라고 여겨도 자네 책은 무지 재미있다네.』
『그, 그래?』
『주인공 일케드가 경찰과 줄이 닿은 인신매매단을 파헤치는 이번 시리즈는 더더욱 근사하지.』
『어? 아직 아무에게도 내용을 공개 안 했는데 어떻게...』
로건의 얼굴 위로 슬그머니 자만심이 떠올랐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나, 이 친구야. 나는 컴퓨터를 잘 만지는 천재야.』
결국 마이클의 노트북을 (불법으로) 해킹했다는 얘기다.

어느 정도 안전해졌다고 판단했던 걸까, 리무진에 탄 것도 아닌데 두 팔을 벌리고 다리를 꼬았다. 조수석에서 바라보았을 적에 그 자세를 취한 로건은 흡사 암흑가 최종 보스처럼 보였다.
『문제는 그게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는 거지. 조사한 내용을 기사로 작성하지 않고 그걸 낼름 소설 줄거리로 쓰다니, 자네도 참 이상한 사람이야, 마이클. 거기다 책에 실명까지 언급해? 그래서야 범인들에게 날 잡아다 죽이쇼~ 무릎 꿇고 비는 꼬락서니지.』
『교정 작업에 들어가면 다른 이름으로 바꿀 예정이었어.』
『아서라, 자네는 게을러서 나중에 바꿔야지 이러고는 금방 까먹잖아.』
로건이 앞좌석을 발로 툭툭 걷어찼다.
존과 마이클은 동시에「그만둬!」고함을 질러댔다.

Posted by 미야

2013/02/20 11:38 2013/02/2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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